2009년 11월 23일 월요일

문학동네 1Q84 리뷰 2등~

 

예스24에서 1Q84를 읽고서 리뷰를 올리면 그 중에 몇 명을 뽑아 상금을 준다는 알림글을 읽고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리뷰를 올렸더니 덜컥~ 2등에 뽑혔다. 1등 3명 2등 10명 3등 33명을 뽑는 대회였는 데 내가 올린 형편없는 리뷰가 2등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내가 알기로는 예스24에 리뷰을 정말 맛깔스럽게 잘 쓰는 일반 리뷰어들이 넘쳐나기 때문에 내공이 약한 나는 힘들겠다 싶었는데 다행히 올리신 분들이 별로 없어 나에게까지 입상의 기회가 왔다..푸하하  대회 입상을 떠나서 내통장에 10만원이 들어온 다는 달콤한 생각에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상금으로 10만원을 입금해줄테니 통장 번호를 알려달라는 쪽지가 왔길래 부랴부랴 답쪽지를 보낸상태다. 언제쯤 넣어줄런지 너무 기다려진다. 10만원은 땅을 파서 나오는 돈도 아니고 하늘에 떨어지는 일은 더더욱 없다. 땀흘리지 않고서는 절대 얻기 힘든 금액임이 분명하다. 세금을 제하고 나면 10권 정도의 책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이 기쁨을 직원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보쌈 먹는 걸로 써버렸다..푸하하

2009년 11월 1일 일요일

Glee-Take a bow

 

Oh, How about a round of applause, Yeah
A standing ovation
Oooooo, Yeah
Yeah, Yeah, Yeah, Yeah

You look so dumb right now
Standing outside my house
Trying to apologize
You’re so ugly when you cry
Please, just cut it out

[Chorus]
Don’t tell me you’re sorry cuz you’re not
Baby when I know you’re only sorry you got caught
But you put on quite a show
You really had me going
But now it’s time to go
Curtain’s finally closing
That was quite a show
Very entertaining
But it’s over now (But it’s over now)
Go on and take a bow

Grab your clothes and get gone (get gone)
You better hurry up
Before the sprinklers come on (come on)
Talkin’ bout'
Girl, I love you, you’re the one
This just looks like a re-run
Please, what else is on (on)

[Chorus]
And don't tell me you’re sorry cuz you’re not
Baby when I know you’re only sorry you got caught
But you put on quite a show
You really had me going
But now it’s time to go
Curtain’s finally closing
That was quite a show
Very entertaining
But it’s over now (But it’s over now)
Go on and take a bow

[Bridge]
Oh, And the award for
The best lie goes to you (goes to you)
For making me believe (that you)
That you could be faithful to me
Let's hear your speech, Oh

How about a round of applause
A standing ovation

But you put on quite a show
Really had me going
Now it’s time to go
Curtain’s finally closing
That was quite a show
Very entertaining
But it’s over now (But it’s over now)
Go on and take a bow
But it’s over now

2009년 10월 31일 토요일

명작을 읽지 않은 이들을 위한 읽은 척 매뉴얼

 

제목이 정말 불량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저 불량한 제목때문에 더 끌린다. 남들에게 알리지 말고  혼자만 알고 싶은 책이기도 한다. 국방부에서 뜬금없이 『나쁜 사마리아인들』 을 금서로 만들어 준 덕에 그 책의 존재 사실조차 모르고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들까지 호기심으로 책을 읽는 바람에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르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이유가 어찌 됐든 전 국민이 자유 무역 주의의 실태를 낱낱이 알게 하여 경제 마인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데 국방부가 큰힘을 발휘한 점은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나쁜 사마리아인들』 을 읽었던 이유도 경제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있어서도 아니고 단순히 그 안에 도대체  무슨 내용이 담겨 있길래 금서로 지정 됐을까 하는 청개구리적 반항심과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마음이었다. 『읽은 척 매뉴얼』 을 읽은 이유도 『나쁜 사마리아인들』를 읽은 맥락과 같다. 귀가 따갑게 책을 읽으라고 권해도 모자를 현실에 도리어 읽지도 않은 책을 읽은 척하라는 취지가 너무나 불량해서 였다.

 

『읽은 척 매뉴얼』을  읽을 때  주의 할 점이 있다. 정부의 부정부패등의 불편한 진실을 온 세상에 까발린 죄로 판매 금지된 금서나 글은 없고 살색과 다리를 90도와 180도 사이로 쫙~ 벌린 야릇한 자세로 악막적인 유혹을 보내는 팜므 파탈의 언니들로 도배된 빨간책, 이유 불문 시간 불문 장소 불문하고 무조건 자빠지고서  '우~~, 아~~' 등의 동물적 신음으로만 도배된 음란 서적을 보듯이 타인의 시선을 의도적으로 의식해 가며 몰래 몰래 숨어서 읽어야 한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 본 매뉴얼을 읽는 것은 적들에게 자신을 노출시키는 자살 행위이자 전과목을 '가'로 장식한 초라한 성적표를 남들에게 들켰을 때 느끼는 쪽팔림과 다를 바 없다. 나 책 읽기를 싫어하고 명작 따위는 읽어본 기억이 없고 일년에 읽는 책은 전자 제품 매뉴얼이 전부인 무식한 년놈이라 읽은 척이라도 할 생각이라고 떠벌리며 다니는 우스운 꼴이 된다. 소극적인 방어로는 책을 아끼는 척 북커버를 사용하여 본 매뉴얼의 제목을 가려 적들에게 무슨 책을 읽는지 숨기는 연막 작전이다. 여기서 진일보한 공격적인 자세는 가끔 미간을 좁히고서 알듯 모를 듯한 의미심장한 표정을 만들어 감동의 쓰나미가 몰려 온 척 연기하여 대단히 감동적인 책을 읽는 척 하는 것이다. 주인공에 완전 몰입한 척 눈물 몇 방울을 쫘내면 더욱 완벽하다. 이러한 연기에 완전 몰입하면 적들은 당신을 엄청난 내공의 독서가로 착각하고서 알아서 꼬리를 내리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들의 약점을 파악한 적들이 언제 공격할 지 모른다. 북 브라더가 당신을 주시하고 있다.

 

 

 

1. 걸리버 여행기 - 조너선 스위프트

2. 죄와 벌 - 도스토예프스트키

3.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 프리드리히 니체

4.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5. 1984 - 조지 오웰

6. 고우영 삼국지 - 고우영

7. 이방인 - 알베르 카뮈

8 . 채털리 부인의 연인 - D.H. 로렌스

9. 보바리 부인 - 귀스타브 플로베르

10. 농담 - 밀란 쿤데라

11. 호밀밭의 파수꾼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12. 위대한 개츠비 - F.스콧 피츠제럴드

13. 백년의 고독 - 가르시아 마르케스

14. 상실의 시대 - 무라카미 하루키

15. 연금술사 - 파울로 코엘료

16. 시크릇 - 론다 번

17.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 켄 블랜차드

 

『읽은 척 매뉴얼』을 읽은 목적이 워낙에 불순했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의외의 큰 수확을 얻은 기분이다. 유머 책도 아니고 당당히 국내도서/문학/비평/창작/이론에 분류되는 책을 읽으면서 배꼽 잡으며 웃는 경험은 결코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웃음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딴지 일보>의 편집 국장으로 있는 저자가 쏟아 내는 이질적이면서도 19금(禁)의 엽기적인 글빨에서 오는 웃음이다. 저자의 글빨을 빌려 표현하면 『읽은 척 매뉴얼』을 읽으면서 웃음의 멀티 오르가슴을 경험할 수 있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경험적으로 똥꼬깊쑤키 B급 오락영화 수준을 지향하는 초절정 하이코메디 씨니컬 패러디 황색 싸이비 루머 저널인 <딴지 일보>라는 말만 들어도 내가 배꼽 잡으며 웃은 이유를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느낌으로 알 것이다.

 

배꼽 잡으며 웃었다고 해서 내용이 부실할거라는 단세포적인 생각은 절대 금물이다. 본 책에서 웃음의 역할은 재치 넘치는 선생님이 점심을 먹고 한 참 졸린 시간에 학생들의 졸음을 쫓고 재미있게 수업에 집중할 수 있게 교육적 목적으로 이야기해 주는 약간 자극적이고 야한 유머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17편의 고전과 베스트 셀러를 「시작하 전에」, 「읽은 척 매뉴얼」, 「읽은 척 세부 스킬」로 구분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

 

「시작하 전에」에는 작가와 해당 책의 일반적인 내용들을 소개한다. 「읽은 척 매뉴얼」에는 등장 인물의 이름과 역활 그리고 성격을 요약해줌으로써 등장 인물들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읽은 척할 수 있는 기초 토대를 마련해준다. 그리고 나서 작품의 전체의 내용을 단 몇 페이지로 압축 요약하여 완벽하게 읽은 척 할 수 있게 된다. 「읽은 척 세부 스킬」에는 읽은 척의 단계를 넘어서 가짜가 진짜가 되고 진짜를 가짜로 만드는 부분이다. 『읽은 척 매뉴얼』에서 언급한 17편의 책을 읽은 독자들에겐 허무하고 힘빠지는 이야기가 될 수 있겠지만 책을 읽은 사람보다 더 완벽하게 읽은 척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핵심 요약이 「읽은 척 세부 스킬」에 서술되어 있다. 남들은 한 달 동안 피똥흘리며 어렵게 터득한 지식을 단돈 만 원을 투자하여 남의 지식을 너무나 쉽게 훔쳐가는 파렴치한 놈이 된 기분이다.

 

『읽은 척 매뉴얼』 을 필독서로 꼭 읽어야 할 사람들이 있다. 두꺼운 책을 보면 겁부터 나고 누군가 대신 요약 정리 해주길 바라는 게으른 사람들. 사고의 폭이 좁고 생각이 없던 어릴적에 읽어서 그 감흥과 내용이 머리에서 완전히 삭제된 사람들. 명작이라 불리는 작품을 읽고서도 이게 왜 명작인지 도대체 이해를 못 하는 사람들. 책을 읽고 나면 등장 인물의 이름과 전체 내용은 잘 기억 하면서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하고 오독하는 위험천만한 사람들. 책 읽기를 좋아 해서 같은 책을 읽은 다른 사람들의 느낌은 어땟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이 읽어야 하는 책이군요..흐흐흐

 

생업에 지친 나머지 읽고 싶어도 책 읽을 의욕을 상실한 독자들에게, 설령 의욕은 있어도 1분 이상 집중하기 힘든 만큼 바쁜 독자들에게, 책 얘기만 나오면 자아 한 곳에 치명상을 입는 마음 가난한 영혼들에게 바치는 평생 교양을 위한 현대인의 필독서라는 책의 취지는 독자들의 호기심과 흥미 유발을 위한 미끼 또는 울고 땡강 피우는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는 달콤함 과자에 불과하며 저자의 말처럼 이율배반적인지 모르겠으나 '책'이란 단어만 들어도 소름이 돋거나 알러지 반응으로 끝없는 하품을 동반한 졸음이 몰려오는 지독히도 책 읽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책 읽기를 권장하는 용감한 책이자 전국민의 필독서가 돼야 마땅한 책이다.

 

책을 읽으면 좋은 것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누군가 "어떻게 좋은데?" 라고 공격적인 질문을 하면 구태의연하고 교과서적인 답변이 궁색해져 "읽고나며 나중에 다 살이되고 피가되니까 그냥 읽어!!" 라고 논리적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반강제 협박투로 일갈했는데 저자가 너무나 멋진 이유를 알려 주었다.

 

대개 외로운 사람이 자주 거울을 보게 되듯 책은 외로운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물건이라는 것이다. 다만 거울은 그 어떤 호화찬란한 거울일지라도 외로운 사람을 더욱 외롭게 하는 반면, 좋은 책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필자가 독자들에게 책을 권하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저자에게 부탁의 말이 있다. 우리 대한 민국 국민  모두가 책 읽기를 생활화하는 그날까지 『읽은 척 매뉴얼 2탄』, 『읽은 척 매뉴얼 3탄』 으로 계속 이어졌으면 바람이 있다. 그리고 고우영의 삼국지를 제외하고 우리 나라의 명작들이 빠져 있는 게 너무나 아쉬웠는데 다음 책에선 기대합니다.

 

2009년 10월 25일 일요일

1Q84

 

무라카미 하루키는 긴 설명이 필요 없는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작가이다.  그의 대표작 『상실의 시대』를 통해서 많은 독자층을 확보했고 그 이후 발표된 작품들로 하루키만의 독특한 문학적 세계를  만들어 왔다. 내가 읽어본 하루키의 작품은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상실의 시대』와  『댄스 댄스 댄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해변의 카프카』, 『스푸트니크의 연인』 정도에 불과하고 지금은 제목만 기억날 뿐 내용은 기억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하루키 작품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열성팬들처럼 그의 작품을 모두 찾아서 읽고 또 읽기를 반복하며 사색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문학적 세계에 대한 이해력은 보통 사람들이 아는 수준을 결코 넘지 못 한다. 하루키 작품에 무조건적인 찬양을 보내는 열혈 독자가 아닌 그냥 책읽기를 좋아하는 독자의 입장에서 『1Q84』를 읽은 후 느낀점을 써내려 가겠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국내 작가들의 신작이 나오면 그들이 이전 작품에서 쏟아 냈던 이야기와 문체가 그리워 누구보다도 서둘러 책을 사게 된다. 반면에 무라카미 하루키를 포함해서 외국 작가들의 신작은 일단 책 구매를 멈칫하게 된다. 내가 멈칫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작품에 대한 기대감이 없어서도 아니고 순전히 번역의 질을 모르기 때문이다. 모든 언론들이 갖가지 미사여구를 붙여 극찬을 하더라도 번역이 엉망이면 읽기를 포기하고 새로운 번역본이 나오길 기도한다. 이러한 나의 마음은 대부분의 독자들도 마찬가질거라 믿는다. 번역이란 작업이 창작만큼이나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함부로 욕할 수 없지만 번역 프로그램을 돌린듯한 괴상한 문장으로 한 페이지를 읽기가 힘들 때면 장인 정신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최소한의 정성마저 없다는 생각에 순간 짜증이 울컥하면서 육두문자의 욕지거리가 나온다. 번역이 엉망이라 독자들로부터 외면당한다면 엄청난 선인세비를 주고 『1Q84』의 판권을 사온 출판사는 분명히 큰 손실을 당할 게 너무나 자명하기 때문에 마케팅뿐만 아니라 번역에도 엄청난 공을 들였으리라 생각된다.  역시나 『1Q84』를 읽는 동안 문장이 이상해서 중간에 맥이 끊기는 일 없이 하루키가 만들어 놓은 세계에 몰입할 수 있었다. 나처럼 번역이 이상하면 어쩌지 하는 고민 따위는 휴지통에 과감히 버려도 될 듯싶다.

 

 소설의 제목이 무척 특이해서 간혹 아이큐84로 읽는 사람들이 있다. 『1Q84』에서 Q 는 Question 의 첫자이다.  『1Q84』는 하루키가 밝혔듯이 조지 오웰의 미래 소설 『1984』에서 모티브를 얻어 쓴 소설이다. 1984, 1Q84를 일본어로 읽으면 발음이 같다고 한다. 숫자 9의 발음이 きゅう(큐우)로 영문 Q의 발음과 비슷해서 생기는 언어적 유희일 수 도 있지만 하루키가 소설속의 시간적 배경인 1984년의 세계와 1Q84년의 세계가 동일하지만 다른 세계라는 점을 표현하는 데 적절한 제목임이다. 조지 오웰의 『1984』는 빅 브라더가 통치하는 전체주의가 극도화된 사회로 가정하고 쓴 디스토피아 소설이자 미래 소설이라면 하루키의 『1Q84』는  두 남녀의 숙명적이고 슬픈 사랑의 이야기인 동시에 윤리적 혼돈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정체성을 반추시켜 주는 과거 소설이다

 

『1Q84』 에는 사회와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 있어야 제대로 읽히는 작품인지 도 모른다. 그렇다고 지레짐작 겁먹을 필요없다. 어려운 이야기를 어렵게 쓰는 것은 들숨과 날숨을 자연스럽게 교차시키는 숨쉬기 운동만큼이나 쉬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루키의 능력은 어려운 이야기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재미와 흥미를 부각시키고 그 안에 감쪽같이 어려운 이야기를 숨겨 놓는 것이다. 숨겨 놓은 진실을 찾은 독자는 보물 찾기의 선물을 받겠지만 못 찾더라도 대부분의 독자들은 재미와 흥미로 충분히 하루키의 작품에 대한 만족감으로 충만해진다. 특히 『1Q84』는 달이 두 개 뜨는 1Q84 의 세계가 존재하는 이야기의 소재가 너무 흥미진진해서 심오한 철학적 사고 없이도 내용 자체에 몰입할 수 있다. 독자들이 쉽게 몰입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1Q84』의 독특한 이야기 진행 방식에 있다.

 

각 장이 작중 여남 주인공 아오마메(여)와 덴고(남)의 이야기가 번갈아 나온다. 아오마메의 이야기가 나오면 다음 장은 덴고의 이야기가 나오는 식으로 서로 주거니 받거니 대화하듯 번갈아 나오면서 전체 이야기가 부드럽게 진행된다. 처음에는 아무런 관련없는 인물들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장을 거듭할수록 두 주인공 사이의 숨겨진 비밀들이 첫날밤 부끄럼 가득한 새색시처럼 조금씩 밝혀지면서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마치 장소만 틀리고 동일 시간대를 공유한 주인공의 모습은 두 대의 카메라 앵글에 담은 영화와 같다. 아오마메의 이야기가 궁금하지만 바로 알 수  없고 덴고의 이야기를 읽어야 다음 이야기를 알 수 있다. 반대로 덴고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도 아오마메의 이야기를 읽어야 다음 이야기를 알 수 있다. 이러한 구성은 마치 결정적이고 중요한 장면에서 아쉽게 끝내고서 다음 회를 기다리게 만드는 드라마처럼 독자들이 그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전광석화의 속도로 페이지를 넘기게 하는 마술같은 힘이 있다.

 

『1Q84』의 제목만큼이나 많은 물음이 필요한 작품이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면 비슷한 맥락의 무언가 있을 거라는 판단이 우선하는 건 당연하다. 『1984』는 작가 살던 당시 소련의 스탈린 독재를 비판한 소설이라면 『1Q84』 은 참혹하고 끔찍한 사건으로 점철된 현대 사회를 환타지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그린 소설정도로 매락을 짚을 수 있다. 『1Q84』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과거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겠지만 그들을 낱낱이 살펴보면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과 달리 고독하고 슬픈 과거를 안고서 현실을 살아가는 슬픈 영혼들이다. 서로 감당할 수 있는 무게만 다를뿐 우리들 중에 상처받지 않은 영혼이 있는지 묻고 싶다.

노부인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성폭행의 흔적을 뚜렷하게 볼 수 있었어요. 그것도 수없이 반복된 흔적이에요. 외음부와 질에는 심하게 찢긴 상처들이 있고, 자궁 내부에도 상처가 있었어요. 미처 성숙하지 않은 조그만 자궁에 성인 남성의 딱딱한 성기가 삽입되었기 때문이지요. 그로 인해 난자의 착상부가 심하게 파열되었습니다. 성장하더라도 임신은 불가능할 거라고 의사는 진단하고 있어요."

 

초경이 시작도 안한 어린 소녀 쓰바사의 망가진 몸상태를 설명한 부분을 읽으면 누구나 깜짝 놀랄 것이다. 최근에 인터넷을 뜨겁게 했던 나영이 사건의 보도와 전혀 다를 바 없기때문이다. 소설 속에서나 있을 법한 잔혹하고 비인륜적인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버젓이 벌어지는 게 현실이다. 아오마메가 들어간 1Q84 의 세계는 리틀 피플, 공기 번데기, 퍼시버와 리시버, 마더와 도터, 두 개의 달이란 환타지적인 요소를 삭제하고 보면 현실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이율배반적으로 하루키가 만든 1Q84 세계가 현실이고 1984 는 우리가 꿈꾸는 비현실적인 유토피아인지 모른다. 결국 1984 세계와 1Q84 세계의 경계선이 애매모호해진다. 암살을 사주하던 노부인이 세상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진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진실이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을 믿는다고 말한 것처럼 우리의 믿음에 따라서 현실은 1984의 세계가 될 수 도 있고 1Q84 의 세계가 될 수 도 있다.

 

 

 

하고픈 얘기는 많지만 마지막으로 새로운 여자 주인공의 탄생을 말하고 싶다. 「아이스픽」와 「살인」이란 단어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80년대 남성들의 가슴을 므흣하게 만들었던 섹시 스타 샤론스톤 주연의 『원초적 본능』이다. 이제는 『원초적 본능』의 샤론 스톤과 더불어 『1Q84』 의 여자 주인공 아오마메가 떠오를 듯 싶다. 샤프한 정장을 차려입은 상냥하고 유능한 비지니스우먼의 모습에 상대를 유혹하기 위해 가슴골을 살짝 보여주는 섹시미까지 겸비한 주인공 아오마메는 겉으로 보여지는 화려한 모습 이면엔 죽어 마땅한 남자들을 죽이는 냉정한 암살자의 모습과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호텔바에서 머리가 헤싱헤싱한 중년 남자를 유혹하여 질펀하고 농밀한 섹스를 즐기는 모습이 공존한다. 그녀는 결코 돈을 목적으로 하거나 개인 원한으로 사람을 죽이는 그런 싸구려 암살자가 아니다.  그녀의 암살 대상은 일반적으로 '죽어 마땅한 사람'으로 분류되는 나쁜 남자들이다. 여기서 말하는 '죽어 마땅한 사람'의 기준은 다분히 주관적인 요소일 수 밖에 없지만 힘없는 여자들에게 폭력을 가하고 성폭행하는 남자들이다. 그런 남자들에게 접근해 그녀의 타고난 손감각으로 목덜미에 위치한 사점을 찾아 그녀가 고안한 아이스픽으로 슬며시 찌르면 피 한방울없이 저세상으로 보낸다. 너무나 깔끔하게 죽기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타살을 의심하기는 커녕 심장 마비등의 돌연사쯤으로 처리하게 되는 완벽한 암살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당당히 자신의 죽음을 선택한 그녀는 분명 우리들에게 사랑의 힘을 보여준 것이 틀림없다. 암살자라는 윤리적인 측면을 떠나서 앞으로 오래 기억될 여자 주인공이 될 것 같다.

 

1Q84 의 세계로 넘어가는 아오마메에게 택시 기사가 "겉모습에 속지 않도록 하세요. 현실이라는 건 언제나 단 하나 뿐입니다."라는 충고를 한다. 그 충고는 비현실적인 현실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던지는 충고로 받아들여도 좋다. 겉모습에 속지 않기 위해서는 변하지 않는 중심이 있어야 하는데 그 해답은 번뇌의 수레바퀴에서 찾을 수 있다.  

 

베트의 번뇌의 수레바퀴 같아, 수레바퀴가 회전하면 바퀴 테두리 쪽에 있는 가치나 감정은 오르락 내리락해. 빛나가기도 하고 어둠에 잠기기도 하고, 하지만 참된 사랑은 바퀴 축에 붙어서 항상 그 자리 그대로야

오늘 밤 두둥실 떠있는 달을 보면 내가 속한 현실이 2009 세계인지 200Q 세계인지 알 수 있겠지?

 

2009년 10월 10일 토요일

세계의 끝 여자 친구

 

두번째로 만나는 김연수 작가의 작품이다. 겉표지와 제목만으로 『세계의 끝 여자친구』의 장르를 분류하면 당연히 연애 소설이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분홍색 커버와 제목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나로하여금 연애 소설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연애 소설을 좋아해서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선택한 건 절대 아니다. 천재 시인 이상(李箱)의 죽음과 작품을 모티브로하여 진짜와 가짜의 차이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물음을 우리에게 던졌던 『꾿빠이, 이상』 에서 받은 김연수 작가에 대한 좋은 느낌때문이었다. 『꾿빠이, 이상』 에서 좋은 느낌을 받지 못 했다면 나와 『세계의 끝 여자친구』는 서로를 외면한 체 영원히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작품에서 받은 좋은 느낌은 작가에 대한 호감으로 전이 된다. 그리고 그 작가의 작품은 모두가 좋을 것이라는 맹목적인 믿음으로 확장된다. 그 좋은 느낌에서 오는 이연수 작가에 대한 믿음이 충만한 상태에서 『세계의 끝 여자친구』의 출간 소식을 접했고 이 놈의 몹쓸 손은 성지 순례를 하듯 지마음대로 장바구니에 책을 담아버렸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만남을 일컫어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하지 않던가.

 

깃털처럼 가벼워보이는 겉표지와 달리 그 안은 소통이란 무거운 주제를 다룬 아홉편의 단편 소설로 구성되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을 읽고 나서 내게 다가온 감정은 꿈을 꾼것처럼 멍한 느낌이었다. 꿈을 꿀 당시에는 세포 하나 하나가 꿈틀거리 정도로 너무나 생생하고 현실처럼 느껴지지만 잠에서 깨고 나면 아침 안개처럼 꿈에 대한 기억들이 희미해지고 하루가 지나면 꿈을 꾸었다는 사실만 떠오를 뿐 희미했던 기억마저도 완전히 증발하여 사라진다.  분명 내가 읽긴 읽었는 데 무엇을 읽었는지 기억이 날듯 말듯 한데 결국엔 또렷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그런 답답한 느낌이었다. 만일에 옆에 있던 누군가가 나에게 『세계의 끝 여자친구』 의 내용이 뭐에요? 재미있어요? 라고 묻는 다면 마치 어려운 철학책을 읽은 것처럼 느낌은 있으나 적절한 대답을 찾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 "글쎄요" 라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흐리멍덩한 대답을 퉁명스럽게 내뱉었을 게 뻔하다.

 

개인적으로 작가의 생각과 철학이 명확하게 들어나고 작품이 전달하는 주제가 확실한 책을 좋아 한다. 보통은 책을 읽고 나면 작가가 의도했던 작품의 주제와 일치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나만의 개똥 철학을 바탕으로 새롭게 느껴지고 해석되는 주제들이 있다. 마치 그럴 때면 나는 작가가 만들어 놓은 작품 세계에서 남들이 발견하지 못하고 작가 자신도 몰랐던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는 나의 예리한 통찰력에 자화자찬하기도 하고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라도 된 것마냥 어깨에 힘도 들어가고 우쭐해진다. 물론, 그러한 발견들이 결코 내가 예리한 통찰력을 가져서 그런게 아님을 알면서도 남들 생각 따위는 무시하고 그냥 그렇게 놀게 냅둬라고 시니컬한 태도로 일관한다. 그런데, 『세계의 끝 여자친구』은 작가의 의도도 도통 모르겠고 작품을 해석할 수 있는 주제를 찾아내서 우쭐해야 할 내 감정은 똥묻은 휴지처럼 완전히 구겨지고 휴지통에 내팽개쳐졌다는 느낌에 매우 당혹스러웠다. 읽긴 읽었으나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과연 나는 『세계의 끝 여자친구』 를 읽은 것인가 안읽은 것인가라는 원초적인 고민에 빠졌다.

 

이런 나의 원초적인 고민에 명쾌한 해답을 준 것은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해설이었다. 그 해설을 통해서 김연수 작가가 독자들에게 던진 화두와 내가 꿈처럼 희미하게 느꼈던 감정이 "소통" 이라는 점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아마도 그의 해설을 읽지 않았다면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갖은 혹평과 비판으로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폄훼하고 내 책장의 빈 공간을 채우는 겉 표지만 예쁜 책으로 치부하는 일 정도이다. 읽는 이의 눈을 불편하게 만드는 번역체 문장과 난삽한 문장이 많고 불필요한 묘사가 많아 오히려 작품의 서사성을 방해했다는 둥 어디서 듣고 읽은 풍월을 내 의견인냥 해서 안체하고 주관적 관점을 완전히 배제하고 객관적 관점에서 냉철하게 판단했을 때 이번 작품은 색깔이 없는 무채색의 밋밋하고 재미 없는 소설 따위로 추락을 시켜야만 내 구겨지고 상처입은 자존심이 회복되었을 지도 모른다.

 

보통 독자라면 웬만해서는 소설책 따위을 연이어 두번 읽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나는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해설을 읽고서 소통이란 주제를 등대불삼아 처음부터 다시 읽게 되었다. 너무나 뻔하고 자명한 일이지만 두번째 읽을 때는 처음보다 확실히 다른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밋밋하게만 느껴졌던 작품이 지금은 감동으로 다가오는 작품도 있었다. 특히,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렀어」라는 작품은 처음 느낌과 두번째 느낌이 너무나 달라서 나 자신도 정말 놀랐다. 아마도 내 자신이 흥미위주의 스토리 라인을 찾고자 신경을 쓰면서 읽다보니 김연수 작가가 숨겨놓은 섬세한 문장을 건성으로 읽었기 때문에 온 뚜렷한 차이점으로 생각된다.  케이케이라는 연하남의 축축히 젖은 몸을 좋아했던 변태스러운 오십대 중반의 미국 아줌마가 지금은 죽고 없는 그의 흔적을 찾고자 한국에 온다. 하지만 그녀의 가이드를 맡은 한국 여자사이에 약간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겨 엉뚱한 곳에 다녀오게 되고 그바람에 저녁 약속에 늦는다는 밋밋한 줄거리였는데 지금은 국적과 언어가 틀리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공통된 감정이 그녀들 사이에 '낙(樂)' 과 '하이퍼바이터미노우시' 를 어렵게 말로 통역하지 않더라도 서로는 마음으로 알 수 있었다는 감동 스토리로 다가왔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에 실린 아홉편의 작품별로 간략한 줄거리와 느낌점을 상세히 적고 싶지만 긴장감과 스릴이 생명인 추리 영화나 소설의 결말을 미리 이야기하면 재미없는 것처럼 앞으로 읽게될 미래 독자들의 감동을 위해 이것으로 정리해야 겠다.

 

뭐니 뭐니해도 『세계의 끝 여자친구』 통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작품과 소통하는 법을 찾은 것이다. 재미없고 어려운 책으로만 남겨졌을 작품을 두번 읽었던 것은 소통을 위한 나름대로의 노력이었다. 김연수 작가가 책 말미에서 말했듯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내가 김연수 작가의 작품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불가능하기 때문에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한 것처럼 작품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독자의 마음가짐이 있을 때 비로소 작품에 숨겨진 보물이 빛을 발하는 게 아닐까? 솔직히 말하면 『세계의 끝 여자친구』을 두번 읽었음에도 아홉편의 작품 모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해결해줄거라 믿는다. 다른 독자분들은 『세계의 끝 여자친구』과 제대로 소통했을까 무척 궁금하다.

 

갑자기 소통의 사전적 의미가 궁금해서 찾아 보았다.

소통( )

1.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

2.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

 

깊어가는 가을에 나는 소통이 막혀 있는 주위 사람이 없는지 찾아보고 그 벽을 허물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을 해봐야겠다. 아마도 내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그들에게 다가 서려는 노력을 해야겠지...그런데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기기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009년 10월 6일 화요일

YES24 주간 우수 리뷰에 선정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저녁 퇴근길에 YES24에서 문자 메세지 한통이 왔다.......

 


YES24 입니다. 이주의 리뷰에 선정 되셨습니다. 안내 쪽지 확인해주세요. 감사합니다.

 

나름대로 책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책의  내용에 완전히 몰입하여 읽기보다는 읽은 책의 양 만을 늘리려고 아둥바둥하는 내 모습이 오히려 안쓰럽게 느껴졌다. 이런 내 잘 못된 버릇을 없애고자 책을 읽고나면 그 느낌점을 리뷰로 남겨보자라는 계획을 세우고서 얼마 전부터 YES24 에 리뷰를 남기기 시작했다... 이런 나의 계획을 열심히 실천하라는 응원의 메세지처럼 리뷰에 당첨되어 만원상당의 상품권을 선물로 받았다. 부족한 글솜씨의 리뷰가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진다는 사실이 정말 부끄럽지만 왠지 선생님한테서 "참 잘했어요"라는 칭찬을 받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2009년 9월 29일 화요일

스페인 너는 자유다

 

 

내 호기심의 시작은 늘 책이었다. 남들은 그냥 무신경하게 넘어갈 법한 아주 사소한 문장 하나로 부터 내 호기심은 발동이 걸린다.

프리힐리아나는 스페인 남부  해안 근처에 있는 작은 산골 마을이었다. 하얀 마을이라고 불리는 지중해식 마을이었는데, 좁고 비탈진 골목을 따라 언덕을 올라가면 흰색이라는 것만 빼면 똑같이 생긴 게 하나도 없는 집들이 꽤 높은 곳까지 쭉 이어져 있었다. 집집마다 파란색 대문이나 파란색 나무 창틀, 벽에 걸린 화분 같은 아기자기한 장식이 있었고, 심지어 길바닥에도 돌 장식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것은 날씨였다. 언덕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면 저 멀리에 지중해가 펼쳐졌는데, 수평선 위에서 시작된 파란 하늘이 머리 위를 지나 온 마을을 다 덮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그 선명한 파란색 때문에 하얀 집들이 훨씬 더 하얗게 보였다. 즉, 그곳에서는 큰 집이 아니라 예쁜집을 갖는 게 관건이었다. 큰 집이 필요가 없었다.

 

물론 직접 가본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 가려면 1층에서 내려가서 비행기를 타고 마드리드까지 날아간 다음 다시 기차를 타고 말라가로, 말라가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네르하로 가야 했다. 거기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산길을 올라가면 산 중턱에 만년설처럼 흩뿌려진 하얀 집들이 나왔다.

[타워-배명훈, 47페이지]

스페인의 시골 마을인 <프리힐리아나>는 배명훈 작가의 『타워』에서 처음으로 알았다. 프리힐리아나에 대한 묘사는 작품의 줄거리와 무관하게 변두리 내용이었지만 나에겐 궁금함을 유발하기엔 충분했다. 너무나 아름답고 동화처럼 묘사되어 오히려 현실성이 없고 작가가 만들어낸 상상속의 마을처럼 느껴졌다. 정말 그런 곳이 있나 미친듯이 궁금했고 인터넷으로 검색을 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나만 몰랐지 많은 사람들이 스페인을 여행했고 프리힐리아나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을 블로그에 올려놓았다. 사진속 그들은 동화속 마을의 주인공이 된 것 마냥 행복과 즐거움 표정이 가득했다. 어느 블로거의 사진은 전문가 뺨칠 정도의 수준이었다. 물론, 날씨도 좋고 풍경이 동화같아서 누가 찍어도 작품 사진이 나올 법한 곳이다.

 

프리힐리아나에 대한 궁금증이 점점 증폭되면서 스페인으로 여행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아직 구체적인 여행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지만 무턱대고 떠나는것 보다는 사전 준비를 하여 알차게 다녀오고 싶다.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해서 필요한 정보를 찾고자 마음먹으면 마우스 클릭 몇 번이면 쉽고 빨리 찾을 수 있지만 아직은  후각을 자극하는 석유 냄새가 물씬 풍기는 아날로그적인 책을 찾아서 읽는 게 더 좋다. 그래서, 처음으로 만난 책이 바로 손미나씨의  에세이 『스페인, 너는 자유다』 이다.

 

앞으로 스페인과 관련된 몇 권의 책을 더 읽을 테지만 첫번째로 『스페인, 너는 자유다』을 선택한 제일 큰 이유는 제목과 겉표지에 있다.  구름이 바람을 타고 흘러가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검은 소가 우뚝 서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제목에 포함된 '자유'란 단어가 가슴을 달뜨게 했다. 손미나씨가 프롤로그에서 고백한 것처럼 따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언제나 이런 저런 이유로 발목을 붙잡는 것은 다름아닌 자기 자신이란 점이 마음에 들어와 공명했다. 나처럼 결정을 앞두고 망설이는 독자들에게 너는 자유이니 스페인으로 떠나라고 말해주는 듬직한 친구의 단호한 조언으로 다가왔다.

 

스페인 여행 정보를 얻고자 한다면 본 책을 추천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내용이 손미나씨 유학생활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큰 도움이 못 된다. 처음 책을 읽고자 했던 목적과 한참 거리가 멀어서 실망할 수 도 있지만 누구나 부러워하는 아나운서의 자리를 버리고 스페인으로 떠날 수 있었던 손미나씨의 용기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수 있는 일년 동안의 다채로운 유학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언젠가 내 생활에 '쉼표'가 필요해지면, 내 영혼에 휴식이 필요해지면, 꼭 다시 스페인을 찾아가 몇 달이고 머물고 싶었다. 그것은 지난 1995년 이후로 늘 꿈꾸어오던 일이었다.
----(생략)----
무엇보다 불규칙한 수면 시간과 식사로 나의 평범한 일상과 건강이 위협받고 있었다.
----(생략)----
정말 쉬고 싶었고 너무나 간절히 공부를 하고 싶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가보지 못한 곳으로 여행도 가고 싶어졌다. 자유로운 새처럼 나는 떠나고 싶었다.
그렇게 휴식과 더불어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는 것을 육감적으로 느끼고 있을 즈음 때마침 읽게 된 두 권의 책이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먼 북소리》에서 하루키는 마흔을 넘기면 절대 하지 못할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한다. '갖고 있는 것들을 미련 없이 버리고 새로운 세상을 알기 위해 떠나는 일'이란 결론을 내리고 그의 나이 서른일곱에 모든 것을 정리해 이탈리아로 떠났다고 했다. 그 여행에서 그는 《상실의 시대》를 탄생시켰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되었다. 또 코엘료의 《연금술사》에는 피라미드의 보석을 찾아 떠나고 싶지만 자기가 가진 양들을 포기하지 못해 방황하는 목동 산티아고가 등장한다. 고심하던 산티아고는 결국 용기를 내어 양들을 버리고 길을 떠나 피라미드에 도착하지만 그곳에 가서야 보물이 자기 집 마당에 묻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생략)----
그녀의 말이 옮았다. 사실 아무도 나를 잡는 사람은 없었다. 내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일 뿐. 내 마음속에 끌어 오르는 열정과 꿈을 위해 용기를 내지 못하는 나야말로 코엘료 소설 속의 목동 산티아고를 닮지 않았는가? 내 고민에 대한 진정한 답은 내 마음속에 있다는 소중한 진실을 몸소 깨닫기 위해서는 나도 나의 양들을 포기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온라인 서점에서 여행 에세이라는 카테고리로 분류 되었는데 오히려 유학 에세이에 어울리는 책이다. 금전적인 문제만 해결되고 큰 욕심 내지 않으면 연휴에 여름 휴가를 붙이면 짧게 유럽 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 물론, 직장 상사와 일을 대신할 동료들의 따가운 눈총와 부러움을 가장한 질투를 받을 마음의 준비는 해야 한다. 하지만, 일년 정도의 유학이나 연수는 전혀 다른 얘기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을 내일이 다람쥐 체바퀴 돌듯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반복되는 일상에 누가나 한 번쯤 일탈을 꿈꾸지만 대학 시절이면 모를까 사회에서 어느 정도 기반을 잡은 직장인에게 특별한 목적과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훌쩍 유학을 떠나는 것은 어느 누가 보아도 무모한 일임이 틀림없다.

 

그녀는 정말 복이 많은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일반 사람들이 어렵고 힘들게 하는 유학 생활과 비교 해보면 스페인어에 능숙한 그녀는 호사스러운 유학 생활을 했다고 악평을 하는 블로거들도 있다. 하지만,  한정된 페이지 안에서 유학 생활 전부를 담을 수 없던 그녀는 기억에 남고 재료가 될 만 에피소드만을 갈무리하여 집필하다보니 독자가 볼 수 없는 어두운 이면이 있으리라 나름대로 판단해본다.

 

유학시절 심한 향수병과 문화적 충격에 빠져 있던 손미나씨에게 아무런 보답도 바라지 않고 호의를 베픈 세네갈의 거부 미스터 디엥과의 만남을 통해서 꿈을 향해 가는 길에는 항상 고통이 따르고 고난의 순간이 있게 마련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한다면 반드시 그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소중한 사실을 배웠던 것처럼 화려한 아나운서에서 작가로 변신을 하는 과정에 어려움이 있을 때 마다 되새김질 하길 바란다.

 

내게 필요한 짧은 스페인 여행에 대한 정보는 다른 책을 통해서 얻을 생각이며, 『스페인, 너는 자유다』 에서는 그녀가 보여준 뜨거운 열정과 변화를 두려워 하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용기가 나에게 자극제가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2009년 9월 27일 일요일

죽은왕녀를위한파반느

 

 

박민규 작가와의 첫만남은 한겨례문학상을 받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통해서였다. 하기 싫은 일도 돈때문에 억지로 하고 있고 하고 싶은 일은 돈때문에 마지막 순위로 미룬 나에게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아도 돼라면 악마의 유혹처럼 달콤하게 속삭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도 치기 힘든 공은 치기 싫고 잡기 힘든 공은 잡기 싫은데 현실은 내 의지와 무관하게 항상 반대로만 움직여 가고 소설속 주인공처럼 현실을 박차고 나갈 용기가 없는 나에게 카타르시스적 만족감을 주었다. 내가 생업을 포기하고 그들처럼 살 순 없지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템포만 느리게 살면서 일에 미쳤던 자신도 돌아보고 그동안 무관심했던 주위 사람들에게도 따뜻한 시선과 관심을 보내야 겠다 마음 먹었다.(역시나, 오래가지 못하고 다시 현실로 복귀했다..ㅠ.ㅠ)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받은 강렬한 이미지 때문에 박민규 작가는 관심 작가 목록 0순위로 등급했다. 첫인상이 좋은 사람은 오래 기억되고 다시 만나고 싶은 것처럼 박민규 작가와 첫만남이 너무 강렬하고 좋았기 때문에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책을 구매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특이하면서도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사랑을 주제로 했던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은 대부분 남자들의 가슴을 달뜨게 하는 아름다운 여배우들의 차지였다. 그러한 비주얼한 영상 때문인지 나 자신도 책을 읽으며 상상하는 대부분의 여주인공은 으레 이쁘고 청순하고 가련한 여배우들의 얼굴을 상상하게 된다. 나도 남자인지라 어쩔 수 없는가 보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표지에 못생기고 어눌한 표정의 시녀를 전면에 배치한 덕에 남자 주인공이 사랑하는 '못생긴 그녀'와 표지의 못생긴 시녀가 자연스럽게 오버랩되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라면 정말 그렇게 못생긴 여자를 사랑할 수 있을까?" 질문을 던져보지만 나의 대답은 역시나 늘 '아니오' 였다. 내가 결코 남들보다 잘나서도 아니고 아름다운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의 본능 때문이다. 나이만 들었지 아직 철이 덜든 내게 못생긴 여자에게 그런 애틋한 감정이 나오는 것은 현실성 없는 소설에서나 가능한 일이며, 저 주인공은 분명 남자가 아니라 화성에서 온 시력나쁜 외계인이겠지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며서도 계속 읽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단지 못생긴 여자와의 러브 스토리를 주제로한 소설로 여자는 결혼하면 다 똑같으니 성격좋은 여자와 결혼하라는 유부남들의 충고처럼 겉으로 보이는 외면의 아름다움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라는 교훈적 연애 소설이라면 나는 결코 본 책을 추천하고 싶지 않다. 그런 이야기에 몇 백 페이지를 할애하는 것 자체가 종이값이 아깝다고 생각한다 . 책의 마지막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말기>라는 소제목이 달리 작가의 말을 읽기전까지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그냥 그렇고 그런 작품이었고 박민규에 대한 실망도 무척 컸다. 물론, 박민규 작가의 행간을 읽은 독자라면 나같은 우를 범하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작가의 말을 읽은 후에 내가 느낀 감정은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내가 그렇게 욕하고 감히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못생긴 그녀가 바로 나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안 순간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올랐다.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라는 물음에 쉽게 "나는 정말 행복합니다"라고 대답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가 행복할 수 없는 이유는 스스로 자족하지 못하고 부와 권력을 손에 쥔 잘나가는 사람들과의 비교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다. 소나타를 타고 다녀도 BMW 외체 차틀 타고 다니는사람들 때문에, 서울에 내 집이 있어도 강남에 100평이 넘는 집에 사는 사람들 때문에, 연봉 5천만원을 받아도 연봉 1억을 받는 사람들 때문에,  화장을 하고 큰돈 들여 성형 수술을 해도 원판이 이쁜 사람들 때문에, 10억의 자산이 있어도 100억이 넘는 자산이 있는 사람들 때문에.. 때문에... 때문에...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고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이 이 미친 사회를 유지하는 원동력이라고 박민규는 말하고 있다.

 

부를 거머쥔 극소수의 인간이 그렇지 못한 절대다수에 군림하는 현대 자본주의 부조리한 시스템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박민규는 우리가 부러워하는 가치들을 <시시하게>보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길 제안한다. 우리가 부러워하면 할 수록 극소수 집단의 견고한 철옹성의 벽은 점점 높아지기 때문에 우리가 부러워 하는 가치를 <시시하게> 만들어 거들떠 보지도 않으면 된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보이지만 절대다수인 우리 모두가 힘을 합치면 세상은 분명 변화될 거라 박민규는 믿고 있으며 우리에게 함께 동참하기를 바라고 있다.(대한민국 상위 1%에 포함되는 독자는 책을 읽고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저한테 연락주세요 친해지고 싶습니다.흐흐흐)

 

부와 권력에서 소외된 절대다수를 대변하는 박민규작가의 생각에 동감하면서도 여전히 부와 권력을 쥔 극소수의 인간들이 마냥 부럽고 그들의 철옹성에 들어가길 꿈꾸는 나는 배반을 꿈꾸는 변절자가 된 기분이라 가슴 한켠이 휑해진다....역시, 난 네오 아담이 될 수 없는 세속적인 인간임이 다시 한번 증명된 셈이다..ㅠ.ㅠ

 

표지 이미지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사용한 점은 탁월한 선택이라 생각된다. 어느 미술 평론가의 말을 빌리면 벨라스케스의 시녀들』를 소설에 비유하면 1인칭, 2인칭, 3인칭이 존재하는 독특한 작품이라고 한다. 구도적으로 정중앙에 위치한 마리가리타 왕녀를 주인공으로 본다면 3인칭 시점으로 볼 수 있다. 오른편에 팔레트를 들고 서있는 화가는 벨라스케스 자신이기 때문에 1인칭 시점으로 볼 수 도 있다. 그렇다면 2인칭은 어디에 있을까? 2인칭은 비밀을 마리가리타 공주 뒤편에 걸린 거울에 있다. 거울에 비친 2명은 바로 왕과 왕비다. 즉, 시녀들』은 국왕 내외가 바라보는 시각에서 그려졌기 때문에 2인칭이 될 수 있다. 박민규 작가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의 결말을 하나로 하지 않고 여러 개로 만든점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표지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 나 자신도 결말을 선택할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되어 박민규 작가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어느날]

얼마전에 페르란도 보테르전이 덕수궁 미술관에서 있었다. 주말에 가야지 마음만 있었지 쉬는 날이면 내몸은 길바닥에 붙은 껌딱지가 된다. 한 주동안 쌓였던 피로는 천톤이 넘는 압력으로 내 몸을 눌러 쥐포처럼 납작하게 만든다. 내 몸 하나 겨우 채울만한 싱글 침대에서 하루 종일 흐느적 거리며 침대가 만들어 놓은 가상의 사각형 울타리 밖을 벗어나지 못한다. 다행히 보테르전을 보겠다는 의지가 게으름보다 강했는지 전시 기간을 일주일 남겨둔 얼마 전에 사각형 울타리를 뚫고 어렵사리 다녀 왔다. 약간의 의지와 바지런함만 있으면 충분히 여유롭게 다녀올 수 있는 것을 항상 막판에 허둥거리며 가는 건 내 오랜 고질병인 듯 싶다. 페르란도 보테르의 여러 작품에서 벨라스케스를 따라서는 작품명에서 알 수 있듯이 벨라스케스의 작품 왕녀 마르가리타를 보테르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재해석하여 다시 그린 작품이다. 보테르의 작품에 나오는 모든 사물은 금방이라도 터질듯 크게 부풀려 그려져 있다. 청순하고 사랑스런 마르가리타 공주가 아래 그림처럼 다이어트가 필요한 뚱뚱보로 변신했다.

 

 

뚱뚱보 공주를 보는 순간 내 머리엔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표지 이미지에서 보았던 못생긴 시녀가 떠올랐다. 표지 이미지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란 작품으로 어느 누구도 못생긴 시녀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면 배치상 중앙에 위치한 사랑스럽고도 깜찍한 마르가리타 공주나, 오른편에 팔레트를 들고 서있는 천재화가 벨라스케스나, 공주 뒤편에 걸린 거울에 비친 왕과 왕비에만 관심이 있었지 못생긴 시녀들은 부족한 여백을 채우는 사물과 다를게 없었다. 아름다운 사람이 주인공이라 생각하는 보통 사람들의 고정 관념과 선입견에 당신네들이 틀렸다고 말해주고 싶었는지 표지 이미지에서 못생긴 시녀에게 환한 조명을 비추고 남은 모든 배경을 암갈색으로 탈색을 했다. 표지를 보는 독자들의 눈은 불편하지만 분명 못생긴 시녀가 주인공임에 틀림없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 클럽

울다 웃으면 똥구멍에 털이 난다고 하는데 반대로 웃다 울어도 똥구멍에 털이 날까 정말 궁금하다면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에서 그 정답을 찾을 수 있다. 내 똥구멍에 털이 있는지는 서평을 끝내고 스스로 밝히기로 하겠다...부끄~.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은 정신을 쏙~ 빼버릴 정도의 빠른 비트의  경쾌한 노래로 시작해서 가슴을 아릿하게 만드는 슬픈 노래로 끝나는 작품이다. 독자로 하여금 하하하~ 웃게 만들었다가 엉엉엉~ 울게 만드는 박민규 작가의 롤로코스터같은 구성이 마음에 든다.  

 

1982년 3월 27일 한국 프로야구 플레이볼 출처 : 디지털 뉴스 아카이브(http://dna.naver.com)

 

나 자신은 야구를 좋아하지 않지만  OB 베어스, 삼성 라이온즈, MBC 청룡, 해태 타이거즈, 롯데 자이언트 정도는 별 어려움 없이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삼미 슈퍼스타즈는 그런 팀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내 머릿속에는 삼미 슈퍼스타즈에 대한 조그만한 흔적조차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과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통해서  존재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박민규 작가가 말했듯이 항상 일등만이 기억되고 역사에 기록되는 험난한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서 늘 꼴지만 했던 삼미슈퍼스타즈는 우리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던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꼴지라는 오명만을 남기고 야구 역사의 수면 밑으로 쓸쓸히 사라졌던 팀이 박민규 작가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통해서 재탄생하게 되었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전반부는 재미로 똘똘 뭉쳐있다. 삼미 슈퍼스타즈가 만들어낸 기록들 도 재미있지만 그런 말도 안되는 기록들이 만들어질 때마다 주인공 팬 클럽 회원들의 실망과 좌절을 표현 하는 방식이 약간은 과장되고 장난스럽게 툭툭~ 내뱉는 말투(구어체)와 행동이 마치 우스꽝스러운 코미디 프로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박민규 작가 특유의 독특한 문체로  문장을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것이 그 상황에 그런 비유가 맞는지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독자의 집중력을 진공 청소기처럼 빨아들인다. 내가 느끼는 중요한 재미의 코드는 동질성에 있다고 본다. 프로 야구팀이라 말하기도 민망한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팀과 그 들이 만들어낸 전무후무한 기록들이 박민규 작가의 머리에서 나온 허구가 아니라 바로 몇 십년전에 실존했던 팀이며 공식적인 기록이란 점이다. 야구 역사를 통틀어 제일 형편없었던 삼미 슈퍼스타즈를 소설의 모티브로 삼은 것은 80년대를 살았던 독자들에겐 빛바랜 흑백 사진을 보는 듯한 추억과 그들과 같은 시공간을 공유했다는 연대감에서 오는 재미도 솔솔하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후반부는 슬픔 그 자체이다. 후반부의 슬픔을 이해하려면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인생 궤적을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려고 초등학고,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은 친구들을 경쟁자삼아 발에 땀이 나도록 공부를 했다.  대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좋은 대기업에 들어가려고 코피 터지게 스펙을 만들었다. 회사에 입사를 했다 남들보다 빨리 승진하기 위해서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서 밤을 새며 일을 했다. 결국 우리의 인생 궤적은 좋은 소속에 들어가기 위한 투쟁으로 점철되었다고 보아도 좋다. 우리가 좋다고 말하는 그런 소속은 희소생때문인지 늘 자리가 모자르다. 들어가고 싶은 사람은 천명이지만 자리는 하나여서 늘 전쟁과도 같은 잔혹한 경쟁은 피할 수 없다. 그런 소속 쟁탈전에서 승리의 깃발을 잡는 사람은 단 한명 뿐이고 나머지 999명은 패배자가 된다. 언제부턴가 개인이 포함된 소속이 그 사람의 인격과 능력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어버린 사회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박민규는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아도 돼"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결정하는 모든 일에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주셨던 아버지가 계셨기에 감사한 마음은 있지만 가끔은 정말로 박민규 작가의 말처럼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아도 돼"라고 나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할 때가 있다. 지금은 달걀 한판을 넘긴 내 나이값때문에 치기 힘든 공도 잘 처볼라고 노력하고 있고 잡기 힘든 공도 잘 잡아 볼려고 노력중에 있다. 비록, 지금은 내가 좋은 소속에 포함되지 못하여 삼미 슈퍼스타즈와 다들 바 없지만 나를 응원해주고 믿는 사람들로 인해 즐겁게 살 수 있는 것 같다. 우리의 영원한 꼴지팀 삼미 슈퍼스타즈는 내게 더이상 부끄러워할 팀이 아니라 나의 쌍둥이 형제처럼 사랑스러운 팀인 것이다.

 

앞서 얘기했던 털에 대한 답을 말하고 서평을 마무리 해야겠다. 내 똥구멍에는 털이 있다. 다른 사람들의 엉뎅이를 까서 일일이 확인해 볼 수 없어서 잘은 모르나 내 똥구멍엔  괄약근을 중심점으로 해서 반경 1cm 안에 분명 털이 기생하고 있다. 내가 의식하지 못하던 어린 시절에 울다 웃어서 생긴 털인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을 읽고 웃다 울어서 생긴 털인지 증명할 방법은 막역한다. 문득, 어른들의 우스개같은 말 장난에 지금까지 내가 속아 온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간다. 본 책을 읽고자 하는 미래 독자분들은 읽기 전에 똥구멍에 털이 있는지 먼저 확인하세요. 

 

박민규식으로 마무리를 하자면 밤하늘의 별처럼 많은 재미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 대한 이야기할 수 있으나 , 달에서 귀환하는 닐 암스트롱의 심정으로 이쯤에서 서평을 끝맺기로 하겠다 .

 

 

 

 

새의 선물

정말 오랜만에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개개인의 관심사가 틀리고 취향이 상이해서 소설의 재미를 판가름하는 잣대는 없을 것이다. 순전히 내 기준에서 재미있는 소설은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기발한 상상력의 산물들이 가득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구태의연한 사고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폭제 역할을 하거나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깔끔하고 정결한 문장으로 맛깔스럽게 표현하여 한 문장 한 문장 읽을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 맞아! 나도 그런 생각했었는데’하며 동감을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은희경의 ‘새의 선물’은 후자에 속한다.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나는 삶이 내게 별반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열두 살에 성장을 멈췄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열두 살짜리 소녀의 이야기가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한 문장력으로 마지막 페이지까지 손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물론, 소설 속에 나오는 심리적 묘사들이 뛰어난 것도 있지만 나도 저런 상황일 때 저런 마음과 생각을 했었는데라는 동감을 이끌어 낸 점과 너무나 일찍 철든 열 두살 소녀의 철없는 이모나 그 주위에 나오는 배경 인물들이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웃이어서 더욱 기억에 남는 것 같다. 마치 소설가가 만들어낸 픽션이 아니라 오래전 서랍 속에 깊숙이 숨겨놓은 일기장을 다시 꺼내어 읽는 기분이었다. 출간된 지 10년이 훨씬 넘었고 최근에 출간되는 세련된 북커버의 책들에 비해 너무나 촌티나고 재미 없어보이는 북커버때문에 읽기를 여러차례 망설였는데 서평이 100건이 넘고 대부분이 칭찬 일색이어서 호기심으로 읽었는데 역시 후회없는 선택이었고 나처럼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주저하지 말고 퍼뜩~ 읽어보라고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