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29일 화요일

스페인 너는 자유다

 

 

내 호기심의 시작은 늘 책이었다. 남들은 그냥 무신경하게 넘어갈 법한 아주 사소한 문장 하나로 부터 내 호기심은 발동이 걸린다.

프리힐리아나는 스페인 남부  해안 근처에 있는 작은 산골 마을이었다. 하얀 마을이라고 불리는 지중해식 마을이었는데, 좁고 비탈진 골목을 따라 언덕을 올라가면 흰색이라는 것만 빼면 똑같이 생긴 게 하나도 없는 집들이 꽤 높은 곳까지 쭉 이어져 있었다. 집집마다 파란색 대문이나 파란색 나무 창틀, 벽에 걸린 화분 같은 아기자기한 장식이 있었고, 심지어 길바닥에도 돌 장식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것은 날씨였다. 언덕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면 저 멀리에 지중해가 펼쳐졌는데, 수평선 위에서 시작된 파란 하늘이 머리 위를 지나 온 마을을 다 덮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그 선명한 파란색 때문에 하얀 집들이 훨씬 더 하얗게 보였다. 즉, 그곳에서는 큰 집이 아니라 예쁜집을 갖는 게 관건이었다. 큰 집이 필요가 없었다.

 

물론 직접 가본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 가려면 1층에서 내려가서 비행기를 타고 마드리드까지 날아간 다음 다시 기차를 타고 말라가로, 말라가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네르하로 가야 했다. 거기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산길을 올라가면 산 중턱에 만년설처럼 흩뿌려진 하얀 집들이 나왔다.

[타워-배명훈, 47페이지]

스페인의 시골 마을인 <프리힐리아나>는 배명훈 작가의 『타워』에서 처음으로 알았다. 프리힐리아나에 대한 묘사는 작품의 줄거리와 무관하게 변두리 내용이었지만 나에겐 궁금함을 유발하기엔 충분했다. 너무나 아름답고 동화처럼 묘사되어 오히려 현실성이 없고 작가가 만들어낸 상상속의 마을처럼 느껴졌다. 정말 그런 곳이 있나 미친듯이 궁금했고 인터넷으로 검색을 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나만 몰랐지 많은 사람들이 스페인을 여행했고 프리힐리아나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을 블로그에 올려놓았다. 사진속 그들은 동화속 마을의 주인공이 된 것 마냥 행복과 즐거움 표정이 가득했다. 어느 블로거의 사진은 전문가 뺨칠 정도의 수준이었다. 물론, 날씨도 좋고 풍경이 동화같아서 누가 찍어도 작품 사진이 나올 법한 곳이다.

 

프리힐리아나에 대한 궁금증이 점점 증폭되면서 스페인으로 여행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아직 구체적인 여행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지만 무턱대고 떠나는것 보다는 사전 준비를 하여 알차게 다녀오고 싶다.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해서 필요한 정보를 찾고자 마음먹으면 마우스 클릭 몇 번이면 쉽고 빨리 찾을 수 있지만 아직은  후각을 자극하는 석유 냄새가 물씬 풍기는 아날로그적인 책을 찾아서 읽는 게 더 좋다. 그래서, 처음으로 만난 책이 바로 손미나씨의  에세이 『스페인, 너는 자유다』 이다.

 

앞으로 스페인과 관련된 몇 권의 책을 더 읽을 테지만 첫번째로 『스페인, 너는 자유다』을 선택한 제일 큰 이유는 제목과 겉표지에 있다.  구름이 바람을 타고 흘러가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검은 소가 우뚝 서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제목에 포함된 '자유'란 단어가 가슴을 달뜨게 했다. 손미나씨가 프롤로그에서 고백한 것처럼 따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언제나 이런 저런 이유로 발목을 붙잡는 것은 다름아닌 자기 자신이란 점이 마음에 들어와 공명했다. 나처럼 결정을 앞두고 망설이는 독자들에게 너는 자유이니 스페인으로 떠나라고 말해주는 듬직한 친구의 단호한 조언으로 다가왔다.

 

스페인 여행 정보를 얻고자 한다면 본 책을 추천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내용이 손미나씨 유학생활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큰 도움이 못 된다. 처음 책을 읽고자 했던 목적과 한참 거리가 멀어서 실망할 수 도 있지만 누구나 부러워하는 아나운서의 자리를 버리고 스페인으로 떠날 수 있었던 손미나씨의 용기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수 있는 일년 동안의 다채로운 유학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언젠가 내 생활에 '쉼표'가 필요해지면, 내 영혼에 휴식이 필요해지면, 꼭 다시 스페인을 찾아가 몇 달이고 머물고 싶었다. 그것은 지난 1995년 이후로 늘 꿈꾸어오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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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불규칙한 수면 시간과 식사로 나의 평범한 일상과 건강이 위협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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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쉬고 싶었고 너무나 간절히 공부를 하고 싶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가보지 못한 곳으로 여행도 가고 싶어졌다. 자유로운 새처럼 나는 떠나고 싶었다.
그렇게 휴식과 더불어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는 것을 육감적으로 느끼고 있을 즈음 때마침 읽게 된 두 권의 책이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먼 북소리》에서 하루키는 마흔을 넘기면 절대 하지 못할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한다. '갖고 있는 것들을 미련 없이 버리고 새로운 세상을 알기 위해 떠나는 일'이란 결론을 내리고 그의 나이 서른일곱에 모든 것을 정리해 이탈리아로 떠났다고 했다. 그 여행에서 그는 《상실의 시대》를 탄생시켰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되었다. 또 코엘료의 《연금술사》에는 피라미드의 보석을 찾아 떠나고 싶지만 자기가 가진 양들을 포기하지 못해 방황하는 목동 산티아고가 등장한다. 고심하던 산티아고는 결국 용기를 내어 양들을 버리고 길을 떠나 피라미드에 도착하지만 그곳에 가서야 보물이 자기 집 마당에 묻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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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말이 옮았다. 사실 아무도 나를 잡는 사람은 없었다. 내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일 뿐. 내 마음속에 끌어 오르는 열정과 꿈을 위해 용기를 내지 못하는 나야말로 코엘료 소설 속의 목동 산티아고를 닮지 않았는가? 내 고민에 대한 진정한 답은 내 마음속에 있다는 소중한 진실을 몸소 깨닫기 위해서는 나도 나의 양들을 포기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온라인 서점에서 여행 에세이라는 카테고리로 분류 되었는데 오히려 유학 에세이에 어울리는 책이다. 금전적인 문제만 해결되고 큰 욕심 내지 않으면 연휴에 여름 휴가를 붙이면 짧게 유럽 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 물론, 직장 상사와 일을 대신할 동료들의 따가운 눈총와 부러움을 가장한 질투를 받을 마음의 준비는 해야 한다. 하지만, 일년 정도의 유학이나 연수는 전혀 다른 얘기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을 내일이 다람쥐 체바퀴 돌듯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반복되는 일상에 누가나 한 번쯤 일탈을 꿈꾸지만 대학 시절이면 모를까 사회에서 어느 정도 기반을 잡은 직장인에게 특별한 목적과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훌쩍 유학을 떠나는 것은 어느 누가 보아도 무모한 일임이 틀림없다.

 

그녀는 정말 복이 많은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일반 사람들이 어렵고 힘들게 하는 유학 생활과 비교 해보면 스페인어에 능숙한 그녀는 호사스러운 유학 생활을 했다고 악평을 하는 블로거들도 있다. 하지만,  한정된 페이지 안에서 유학 생활 전부를 담을 수 없던 그녀는 기억에 남고 재료가 될 만 에피소드만을 갈무리하여 집필하다보니 독자가 볼 수 없는 어두운 이면이 있으리라 나름대로 판단해본다.

 

유학시절 심한 향수병과 문화적 충격에 빠져 있던 손미나씨에게 아무런 보답도 바라지 않고 호의를 베픈 세네갈의 거부 미스터 디엥과의 만남을 통해서 꿈을 향해 가는 길에는 항상 고통이 따르고 고난의 순간이 있게 마련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한다면 반드시 그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소중한 사실을 배웠던 것처럼 화려한 아나운서에서 작가로 변신을 하는 과정에 어려움이 있을 때 마다 되새김질 하길 바란다.

 

내게 필요한 짧은 스페인 여행에 대한 정보는 다른 책을 통해서 얻을 생각이며, 『스페인, 너는 자유다』 에서는 그녀가 보여준 뜨거운 열정과 변화를 두려워 하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용기가 나에게 자극제가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2009년 9월 27일 일요일

죽은왕녀를위한파반느

 

 

박민규 작가와의 첫만남은 한겨례문학상을 받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통해서였다. 하기 싫은 일도 돈때문에 억지로 하고 있고 하고 싶은 일은 돈때문에 마지막 순위로 미룬 나에게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아도 돼라면 악마의 유혹처럼 달콤하게 속삭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도 치기 힘든 공은 치기 싫고 잡기 힘든 공은 잡기 싫은데 현실은 내 의지와 무관하게 항상 반대로만 움직여 가고 소설속 주인공처럼 현실을 박차고 나갈 용기가 없는 나에게 카타르시스적 만족감을 주었다. 내가 생업을 포기하고 그들처럼 살 순 없지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템포만 느리게 살면서 일에 미쳤던 자신도 돌아보고 그동안 무관심했던 주위 사람들에게도 따뜻한 시선과 관심을 보내야 겠다 마음 먹었다.(역시나, 오래가지 못하고 다시 현실로 복귀했다..ㅠ.ㅠ)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받은 강렬한 이미지 때문에 박민규 작가는 관심 작가 목록 0순위로 등급했다. 첫인상이 좋은 사람은 오래 기억되고 다시 만나고 싶은 것처럼 박민규 작가와 첫만남이 너무 강렬하고 좋았기 때문에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책을 구매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특이하면서도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사랑을 주제로 했던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은 대부분 남자들의 가슴을 달뜨게 하는 아름다운 여배우들의 차지였다. 그러한 비주얼한 영상 때문인지 나 자신도 책을 읽으며 상상하는 대부분의 여주인공은 으레 이쁘고 청순하고 가련한 여배우들의 얼굴을 상상하게 된다. 나도 남자인지라 어쩔 수 없는가 보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표지에 못생기고 어눌한 표정의 시녀를 전면에 배치한 덕에 남자 주인공이 사랑하는 '못생긴 그녀'와 표지의 못생긴 시녀가 자연스럽게 오버랩되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라면 정말 그렇게 못생긴 여자를 사랑할 수 있을까?" 질문을 던져보지만 나의 대답은 역시나 늘 '아니오' 였다. 내가 결코 남들보다 잘나서도 아니고 아름다운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의 본능 때문이다. 나이만 들었지 아직 철이 덜든 내게 못생긴 여자에게 그런 애틋한 감정이 나오는 것은 현실성 없는 소설에서나 가능한 일이며, 저 주인공은 분명 남자가 아니라 화성에서 온 시력나쁜 외계인이겠지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며서도 계속 읽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단지 못생긴 여자와의 러브 스토리를 주제로한 소설로 여자는 결혼하면 다 똑같으니 성격좋은 여자와 결혼하라는 유부남들의 충고처럼 겉으로 보이는 외면의 아름다움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라는 교훈적 연애 소설이라면 나는 결코 본 책을 추천하고 싶지 않다. 그런 이야기에 몇 백 페이지를 할애하는 것 자체가 종이값이 아깝다고 생각한다 . 책의 마지막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말기>라는 소제목이 달리 작가의 말을 읽기전까지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그냥 그렇고 그런 작품이었고 박민규에 대한 실망도 무척 컸다. 물론, 박민규 작가의 행간을 읽은 독자라면 나같은 우를 범하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작가의 말을 읽은 후에 내가 느낀 감정은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내가 그렇게 욕하고 감히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못생긴 그녀가 바로 나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안 순간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올랐다.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라는 물음에 쉽게 "나는 정말 행복합니다"라고 대답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가 행복할 수 없는 이유는 스스로 자족하지 못하고 부와 권력을 손에 쥔 잘나가는 사람들과의 비교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다. 소나타를 타고 다녀도 BMW 외체 차틀 타고 다니는사람들 때문에, 서울에 내 집이 있어도 강남에 100평이 넘는 집에 사는 사람들 때문에, 연봉 5천만원을 받아도 연봉 1억을 받는 사람들 때문에,  화장을 하고 큰돈 들여 성형 수술을 해도 원판이 이쁜 사람들 때문에, 10억의 자산이 있어도 100억이 넘는 자산이 있는 사람들 때문에.. 때문에... 때문에...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고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이 이 미친 사회를 유지하는 원동력이라고 박민규는 말하고 있다.

 

부를 거머쥔 극소수의 인간이 그렇지 못한 절대다수에 군림하는 현대 자본주의 부조리한 시스템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박민규는 우리가 부러워하는 가치들을 <시시하게>보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길 제안한다. 우리가 부러워하면 할 수록 극소수 집단의 견고한 철옹성의 벽은 점점 높아지기 때문에 우리가 부러워 하는 가치를 <시시하게> 만들어 거들떠 보지도 않으면 된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보이지만 절대다수인 우리 모두가 힘을 합치면 세상은 분명 변화될 거라 박민규는 믿고 있으며 우리에게 함께 동참하기를 바라고 있다.(대한민국 상위 1%에 포함되는 독자는 책을 읽고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저한테 연락주세요 친해지고 싶습니다.흐흐흐)

 

부와 권력에서 소외된 절대다수를 대변하는 박민규작가의 생각에 동감하면서도 여전히 부와 권력을 쥔 극소수의 인간들이 마냥 부럽고 그들의 철옹성에 들어가길 꿈꾸는 나는 배반을 꿈꾸는 변절자가 된 기분이라 가슴 한켠이 휑해진다....역시, 난 네오 아담이 될 수 없는 세속적인 인간임이 다시 한번 증명된 셈이다..ㅠ.ㅠ

 

표지 이미지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사용한 점은 탁월한 선택이라 생각된다. 어느 미술 평론가의 말을 빌리면 벨라스케스의 시녀들』를 소설에 비유하면 1인칭, 2인칭, 3인칭이 존재하는 독특한 작품이라고 한다. 구도적으로 정중앙에 위치한 마리가리타 왕녀를 주인공으로 본다면 3인칭 시점으로 볼 수 있다. 오른편에 팔레트를 들고 서있는 화가는 벨라스케스 자신이기 때문에 1인칭 시점으로 볼 수 도 있다. 그렇다면 2인칭은 어디에 있을까? 2인칭은 비밀을 마리가리타 공주 뒤편에 걸린 거울에 있다. 거울에 비친 2명은 바로 왕과 왕비다. 즉, 시녀들』은 국왕 내외가 바라보는 시각에서 그려졌기 때문에 2인칭이 될 수 있다. 박민규 작가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의 결말을 하나로 하지 않고 여러 개로 만든점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표지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 나 자신도 결말을 선택할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되어 박민규 작가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어느날]

얼마전에 페르란도 보테르전이 덕수궁 미술관에서 있었다. 주말에 가야지 마음만 있었지 쉬는 날이면 내몸은 길바닥에 붙은 껌딱지가 된다. 한 주동안 쌓였던 피로는 천톤이 넘는 압력으로 내 몸을 눌러 쥐포처럼 납작하게 만든다. 내 몸 하나 겨우 채울만한 싱글 침대에서 하루 종일 흐느적 거리며 침대가 만들어 놓은 가상의 사각형 울타리 밖을 벗어나지 못한다. 다행히 보테르전을 보겠다는 의지가 게으름보다 강했는지 전시 기간을 일주일 남겨둔 얼마 전에 사각형 울타리를 뚫고 어렵사리 다녀 왔다. 약간의 의지와 바지런함만 있으면 충분히 여유롭게 다녀올 수 있는 것을 항상 막판에 허둥거리며 가는 건 내 오랜 고질병인 듯 싶다. 페르란도 보테르의 여러 작품에서 벨라스케스를 따라서는 작품명에서 알 수 있듯이 벨라스케스의 작품 왕녀 마르가리타를 보테르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재해석하여 다시 그린 작품이다. 보테르의 작품에 나오는 모든 사물은 금방이라도 터질듯 크게 부풀려 그려져 있다. 청순하고 사랑스런 마르가리타 공주가 아래 그림처럼 다이어트가 필요한 뚱뚱보로 변신했다.

 

 

뚱뚱보 공주를 보는 순간 내 머리엔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표지 이미지에서 보았던 못생긴 시녀가 떠올랐다. 표지 이미지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란 작품으로 어느 누구도 못생긴 시녀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면 배치상 중앙에 위치한 사랑스럽고도 깜찍한 마르가리타 공주나, 오른편에 팔레트를 들고 서있는 천재화가 벨라스케스나, 공주 뒤편에 걸린 거울에 비친 왕과 왕비에만 관심이 있었지 못생긴 시녀들은 부족한 여백을 채우는 사물과 다를게 없었다. 아름다운 사람이 주인공이라 생각하는 보통 사람들의 고정 관념과 선입견에 당신네들이 틀렸다고 말해주고 싶었는지 표지 이미지에서 못생긴 시녀에게 환한 조명을 비추고 남은 모든 배경을 암갈색으로 탈색을 했다. 표지를 보는 독자들의 눈은 불편하지만 분명 못생긴 시녀가 주인공임에 틀림없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 클럽

울다 웃으면 똥구멍에 털이 난다고 하는데 반대로 웃다 울어도 똥구멍에 털이 날까 정말 궁금하다면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에서 그 정답을 찾을 수 있다. 내 똥구멍에 털이 있는지는 서평을 끝내고 스스로 밝히기로 하겠다...부끄~.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은 정신을 쏙~ 빼버릴 정도의 빠른 비트의  경쾌한 노래로 시작해서 가슴을 아릿하게 만드는 슬픈 노래로 끝나는 작품이다. 독자로 하여금 하하하~ 웃게 만들었다가 엉엉엉~ 울게 만드는 박민규 작가의 롤로코스터같은 구성이 마음에 든다.  

 

1982년 3월 27일 한국 프로야구 플레이볼 출처 : 디지털 뉴스 아카이브(http://dna.naver.com)

 

나 자신은 야구를 좋아하지 않지만  OB 베어스, 삼성 라이온즈, MBC 청룡, 해태 타이거즈, 롯데 자이언트 정도는 별 어려움 없이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삼미 슈퍼스타즈는 그런 팀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내 머릿속에는 삼미 슈퍼스타즈에 대한 조그만한 흔적조차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과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통해서  존재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박민규 작가가 말했듯이 항상 일등만이 기억되고 역사에 기록되는 험난한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서 늘 꼴지만 했던 삼미슈퍼스타즈는 우리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던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꼴지라는 오명만을 남기고 야구 역사의 수면 밑으로 쓸쓸히 사라졌던 팀이 박민규 작가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통해서 재탄생하게 되었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전반부는 재미로 똘똘 뭉쳐있다. 삼미 슈퍼스타즈가 만들어낸 기록들 도 재미있지만 그런 말도 안되는 기록들이 만들어질 때마다 주인공 팬 클럽 회원들의 실망과 좌절을 표현 하는 방식이 약간은 과장되고 장난스럽게 툭툭~ 내뱉는 말투(구어체)와 행동이 마치 우스꽝스러운 코미디 프로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박민규 작가 특유의 독특한 문체로  문장을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것이 그 상황에 그런 비유가 맞는지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독자의 집중력을 진공 청소기처럼 빨아들인다. 내가 느끼는 중요한 재미의 코드는 동질성에 있다고 본다. 프로 야구팀이라 말하기도 민망한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팀과 그 들이 만들어낸 전무후무한 기록들이 박민규 작가의 머리에서 나온 허구가 아니라 바로 몇 십년전에 실존했던 팀이며 공식적인 기록이란 점이다. 야구 역사를 통틀어 제일 형편없었던 삼미 슈퍼스타즈를 소설의 모티브로 삼은 것은 80년대를 살았던 독자들에겐 빛바랜 흑백 사진을 보는 듯한 추억과 그들과 같은 시공간을 공유했다는 연대감에서 오는 재미도 솔솔하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후반부는 슬픔 그 자체이다. 후반부의 슬픔을 이해하려면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인생 궤적을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려고 초등학고,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은 친구들을 경쟁자삼아 발에 땀이 나도록 공부를 했다.  대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좋은 대기업에 들어가려고 코피 터지게 스펙을 만들었다. 회사에 입사를 했다 남들보다 빨리 승진하기 위해서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서 밤을 새며 일을 했다. 결국 우리의 인생 궤적은 좋은 소속에 들어가기 위한 투쟁으로 점철되었다고 보아도 좋다. 우리가 좋다고 말하는 그런 소속은 희소생때문인지 늘 자리가 모자르다. 들어가고 싶은 사람은 천명이지만 자리는 하나여서 늘 전쟁과도 같은 잔혹한 경쟁은 피할 수 없다. 그런 소속 쟁탈전에서 승리의 깃발을 잡는 사람은 단 한명 뿐이고 나머지 999명은 패배자가 된다. 언제부턴가 개인이 포함된 소속이 그 사람의 인격과 능력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어버린 사회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박민규는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아도 돼"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결정하는 모든 일에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주셨던 아버지가 계셨기에 감사한 마음은 있지만 가끔은 정말로 박민규 작가의 말처럼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아도 돼"라고 나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할 때가 있다. 지금은 달걀 한판을 넘긴 내 나이값때문에 치기 힘든 공도 잘 처볼라고 노력하고 있고 잡기 힘든 공도 잘 잡아 볼려고 노력중에 있다. 비록, 지금은 내가 좋은 소속에 포함되지 못하여 삼미 슈퍼스타즈와 다들 바 없지만 나를 응원해주고 믿는 사람들로 인해 즐겁게 살 수 있는 것 같다. 우리의 영원한 꼴지팀 삼미 슈퍼스타즈는 내게 더이상 부끄러워할 팀이 아니라 나의 쌍둥이 형제처럼 사랑스러운 팀인 것이다.

 

앞서 얘기했던 털에 대한 답을 말하고 서평을 마무리 해야겠다. 내 똥구멍에는 털이 있다. 다른 사람들의 엉뎅이를 까서 일일이 확인해 볼 수 없어서 잘은 모르나 내 똥구멍엔  괄약근을 중심점으로 해서 반경 1cm 안에 분명 털이 기생하고 있다. 내가 의식하지 못하던 어린 시절에 울다 웃어서 생긴 털인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을 읽고 웃다 울어서 생긴 털인지 증명할 방법은 막역한다. 문득, 어른들의 우스개같은 말 장난에 지금까지 내가 속아 온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간다. 본 책을 읽고자 하는 미래 독자분들은 읽기 전에 똥구멍에 털이 있는지 먼저 확인하세요. 

 

박민규식으로 마무리를 하자면 밤하늘의 별처럼 많은 재미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 대한 이야기할 수 있으나 , 달에서 귀환하는 닐 암스트롱의 심정으로 이쯤에서 서평을 끝맺기로 하겠다 .

 

 

 

 

새의 선물

정말 오랜만에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개개인의 관심사가 틀리고 취향이 상이해서 소설의 재미를 판가름하는 잣대는 없을 것이다. 순전히 내 기준에서 재미있는 소설은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기발한 상상력의 산물들이 가득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구태의연한 사고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폭제 역할을 하거나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깔끔하고 정결한 문장으로 맛깔스럽게 표현하여 한 문장 한 문장 읽을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 맞아! 나도 그런 생각했었는데’하며 동감을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은희경의 ‘새의 선물’은 후자에 속한다.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나는 삶이 내게 별반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열두 살에 성장을 멈췄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열두 살짜리 소녀의 이야기가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한 문장력으로 마지막 페이지까지 손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물론, 소설 속에 나오는 심리적 묘사들이 뛰어난 것도 있지만 나도 저런 상황일 때 저런 마음과 생각을 했었는데라는 동감을 이끌어 낸 점과 너무나 일찍 철든 열 두살 소녀의 철없는 이모나 그 주위에 나오는 배경 인물들이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웃이어서 더욱 기억에 남는 것 같다. 마치 소설가가 만들어낸 픽션이 아니라 오래전 서랍 속에 깊숙이 숨겨놓은 일기장을 다시 꺼내어 읽는 기분이었다. 출간된 지 10년이 훨씬 넘었고 최근에 출간되는 세련된 북커버의 책들에 비해 너무나 촌티나고 재미 없어보이는 북커버때문에 읽기를 여러차례 망설였는데 서평이 100건이 넘고 대부분이 칭찬 일색이어서 호기심으로 읽었는데 역시 후회없는 선택이었고 나처럼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주저하지 말고 퍼뜩~ 읽어보라고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