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29일 화요일

스페인 너는 자유다

 

 

내 호기심의 시작은 늘 책이었다. 남들은 그냥 무신경하게 넘어갈 법한 아주 사소한 문장 하나로 부터 내 호기심은 발동이 걸린다.

프리힐리아나는 스페인 남부  해안 근처에 있는 작은 산골 마을이었다. 하얀 마을이라고 불리는 지중해식 마을이었는데, 좁고 비탈진 골목을 따라 언덕을 올라가면 흰색이라는 것만 빼면 똑같이 생긴 게 하나도 없는 집들이 꽤 높은 곳까지 쭉 이어져 있었다. 집집마다 파란색 대문이나 파란색 나무 창틀, 벽에 걸린 화분 같은 아기자기한 장식이 있었고, 심지어 길바닥에도 돌 장식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것은 날씨였다. 언덕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면 저 멀리에 지중해가 펼쳐졌는데, 수평선 위에서 시작된 파란 하늘이 머리 위를 지나 온 마을을 다 덮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그 선명한 파란색 때문에 하얀 집들이 훨씬 더 하얗게 보였다. 즉, 그곳에서는 큰 집이 아니라 예쁜집을 갖는 게 관건이었다. 큰 집이 필요가 없었다.

 

물론 직접 가본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 가려면 1층에서 내려가서 비행기를 타고 마드리드까지 날아간 다음 다시 기차를 타고 말라가로, 말라가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네르하로 가야 했다. 거기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산길을 올라가면 산 중턱에 만년설처럼 흩뿌려진 하얀 집들이 나왔다.

[타워-배명훈, 47페이지]

스페인의 시골 마을인 <프리힐리아나>는 배명훈 작가의 『타워』에서 처음으로 알았다. 프리힐리아나에 대한 묘사는 작품의 줄거리와 무관하게 변두리 내용이었지만 나에겐 궁금함을 유발하기엔 충분했다. 너무나 아름답고 동화처럼 묘사되어 오히려 현실성이 없고 작가가 만들어낸 상상속의 마을처럼 느껴졌다. 정말 그런 곳이 있나 미친듯이 궁금했고 인터넷으로 검색을 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나만 몰랐지 많은 사람들이 스페인을 여행했고 프리힐리아나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을 블로그에 올려놓았다. 사진속 그들은 동화속 마을의 주인공이 된 것 마냥 행복과 즐거움 표정이 가득했다. 어느 블로거의 사진은 전문가 뺨칠 정도의 수준이었다. 물론, 날씨도 좋고 풍경이 동화같아서 누가 찍어도 작품 사진이 나올 법한 곳이다.

 

프리힐리아나에 대한 궁금증이 점점 증폭되면서 스페인으로 여행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아직 구체적인 여행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지만 무턱대고 떠나는것 보다는 사전 준비를 하여 알차게 다녀오고 싶다.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해서 필요한 정보를 찾고자 마음먹으면 마우스 클릭 몇 번이면 쉽고 빨리 찾을 수 있지만 아직은  후각을 자극하는 석유 냄새가 물씬 풍기는 아날로그적인 책을 찾아서 읽는 게 더 좋다. 그래서, 처음으로 만난 책이 바로 손미나씨의  에세이 『스페인, 너는 자유다』 이다.

 

앞으로 스페인과 관련된 몇 권의 책을 더 읽을 테지만 첫번째로 『스페인, 너는 자유다』을 선택한 제일 큰 이유는 제목과 겉표지에 있다.  구름이 바람을 타고 흘러가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검은 소가 우뚝 서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제목에 포함된 '자유'란 단어가 가슴을 달뜨게 했다. 손미나씨가 프롤로그에서 고백한 것처럼 따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언제나 이런 저런 이유로 발목을 붙잡는 것은 다름아닌 자기 자신이란 점이 마음에 들어와 공명했다. 나처럼 결정을 앞두고 망설이는 독자들에게 너는 자유이니 스페인으로 떠나라고 말해주는 듬직한 친구의 단호한 조언으로 다가왔다.

 

스페인 여행 정보를 얻고자 한다면 본 책을 추천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내용이 손미나씨 유학생활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큰 도움이 못 된다. 처음 책을 읽고자 했던 목적과 한참 거리가 멀어서 실망할 수 도 있지만 누구나 부러워하는 아나운서의 자리를 버리고 스페인으로 떠날 수 있었던 손미나씨의 용기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수 있는 일년 동안의 다채로운 유학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언젠가 내 생활에 '쉼표'가 필요해지면, 내 영혼에 휴식이 필요해지면, 꼭 다시 스페인을 찾아가 몇 달이고 머물고 싶었다. 그것은 지난 1995년 이후로 늘 꿈꾸어오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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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불규칙한 수면 시간과 식사로 나의 평범한 일상과 건강이 위협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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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쉬고 싶었고 너무나 간절히 공부를 하고 싶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가보지 못한 곳으로 여행도 가고 싶어졌다. 자유로운 새처럼 나는 떠나고 싶었다.
그렇게 휴식과 더불어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는 것을 육감적으로 느끼고 있을 즈음 때마침 읽게 된 두 권의 책이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먼 북소리》에서 하루키는 마흔을 넘기면 절대 하지 못할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한다. '갖고 있는 것들을 미련 없이 버리고 새로운 세상을 알기 위해 떠나는 일'이란 결론을 내리고 그의 나이 서른일곱에 모든 것을 정리해 이탈리아로 떠났다고 했다. 그 여행에서 그는 《상실의 시대》를 탄생시켰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되었다. 또 코엘료의 《연금술사》에는 피라미드의 보석을 찾아 떠나고 싶지만 자기가 가진 양들을 포기하지 못해 방황하는 목동 산티아고가 등장한다. 고심하던 산티아고는 결국 용기를 내어 양들을 버리고 길을 떠나 피라미드에 도착하지만 그곳에 가서야 보물이 자기 집 마당에 묻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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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말이 옮았다. 사실 아무도 나를 잡는 사람은 없었다. 내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일 뿐. 내 마음속에 끌어 오르는 열정과 꿈을 위해 용기를 내지 못하는 나야말로 코엘료 소설 속의 목동 산티아고를 닮지 않았는가? 내 고민에 대한 진정한 답은 내 마음속에 있다는 소중한 진실을 몸소 깨닫기 위해서는 나도 나의 양들을 포기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온라인 서점에서 여행 에세이라는 카테고리로 분류 되었는데 오히려 유학 에세이에 어울리는 책이다. 금전적인 문제만 해결되고 큰 욕심 내지 않으면 연휴에 여름 휴가를 붙이면 짧게 유럽 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 물론, 직장 상사와 일을 대신할 동료들의 따가운 눈총와 부러움을 가장한 질투를 받을 마음의 준비는 해야 한다. 하지만, 일년 정도의 유학이나 연수는 전혀 다른 얘기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을 내일이 다람쥐 체바퀴 돌듯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반복되는 일상에 누가나 한 번쯤 일탈을 꿈꾸지만 대학 시절이면 모를까 사회에서 어느 정도 기반을 잡은 직장인에게 특별한 목적과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훌쩍 유학을 떠나는 것은 어느 누가 보아도 무모한 일임이 틀림없다.

 

그녀는 정말 복이 많은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일반 사람들이 어렵고 힘들게 하는 유학 생활과 비교 해보면 스페인어에 능숙한 그녀는 호사스러운 유학 생활을 했다고 악평을 하는 블로거들도 있다. 하지만,  한정된 페이지 안에서 유학 생활 전부를 담을 수 없던 그녀는 기억에 남고 재료가 될 만 에피소드만을 갈무리하여 집필하다보니 독자가 볼 수 없는 어두운 이면이 있으리라 나름대로 판단해본다.

 

유학시절 심한 향수병과 문화적 충격에 빠져 있던 손미나씨에게 아무런 보답도 바라지 않고 호의를 베픈 세네갈의 거부 미스터 디엥과의 만남을 통해서 꿈을 향해 가는 길에는 항상 고통이 따르고 고난의 순간이 있게 마련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한다면 반드시 그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소중한 사실을 배웠던 것처럼 화려한 아나운서에서 작가로 변신을 하는 과정에 어려움이 있을 때 마다 되새김질 하길 바란다.

 

내게 필요한 짧은 스페인 여행에 대한 정보는 다른 책을 통해서 얻을 생각이며, 『스페인, 너는 자유다』 에서는 그녀가 보여준 뜨거운 열정과 변화를 두려워 하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용기가 나에게 자극제가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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