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받은 강렬한 이미지 때문에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특이하면서도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사랑을 주제로 했던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은 대부분 남자들의 가슴을 달뜨게 하는 아름다운 여배우들의 차지였다. 그러한 비주얼한 영상 때문인지 나 자신도 책을 읽으며 상상하는 대부분의 여주인공은 으레 이쁘고 청순하고 가련한 여배우들의 얼굴을 상상하게 된다. 나도 남자인지라 어쩔 수 없는가 보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표지에 못생기고 어눌한 표정의 시녀를 전면에 배치한 덕에 남자 주인공이 사랑하는 '못생긴 그녀'와 표지의 못생긴 시녀가 자연스럽게 오버랩되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라면 정말 그렇게 못생긴 여자를 사랑할 수 있을까?" 질문을 던져보지만 나의 대답은 역시나 늘 '아니오' 였다. 내가 결코 남들보다 잘나서도 아니고 아름다운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의 본능 때문이다. 나이만 들었지 아직 철이 덜든 내게 못생긴 여자에게 그런 애틋한 감정이 나오는 것은 현실성 없는 소설에서나 가능한 일이며, 저 주인공은 분명 남자가 아니라 화성에서 온 시력나쁜 외계인이겠지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며서도 계속 읽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단지 못생긴 여자와의 러브 스토리를 주제로한 소설로 여자는 결혼하면 다 똑같으니 성격좋은 여자와 결혼하라는 유부남들의 충고처럼 겉으로 보이는 외면의 아름다움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라는 교훈적 연애 소설이라면 나는 결코 본 책을 추천하고 싶지 않다. 그런 이야기에 몇 백 페이지를 할애하는 것 자체가 종이값이 아깝다고 생각한다 . 책의 마지막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말기>라는 소제목이 달리 작가의 말을 읽기전까지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그냥 그렇고 그런 작품이었고 박민규에 대한 실망도 무척 컸다. 물론, 박민규 작가의 행간을 읽은 독자라면 나같은 우를 범하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작가의 말을 읽은 후에 내가 느낀 감정은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내가 그렇게 욕하고 감히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못생긴 그녀가 바로 나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안 순간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올랐다.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라는 물음에 쉽게 "나는 정말 행복합니다"라고 대답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가 행복할 수 없는 이유는 스스로 자족하지 못하고 부와 권력을 손에 쥔 잘나가는 사람들과의 비교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다. 소나타를 타고 다녀도 BMW 외체 차틀 타고 다니는사람들 때문에, 서울에 내 집이 있어도 강남에 100평이 넘는 집에 사는 사람들 때문에, 연봉 5천만원을 받아도 연봉 1억을 받는 사람들 때문에, 화장을 하고 큰돈 들여 성형 수술을 해도 원판이 이쁜 사람들 때문에, 10억의 자산이 있어도 100억이 넘는 자산이 있는 사람들 때문에.. 때문에... 때문에...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고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이 이 미친 사회를 유지하는 원동력이라고 박민규는 말하고 있다.
부를 거머쥔 극소수의 인간이 그렇지 못한 절대다수에 군림하는 현대 자본주의 부조리한 시스템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박민규는 우리가 부러워하는 가치들을 <시시하게>보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길 제안한다. 우리가 부러워하면 할 수록 극소수 집단의 견고한 철옹성의 벽은 점점 높아지기 때문에 우리가 부러워 하는 가치를 <시시하게> 만들어 거들떠 보지도 않으면 된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보이지만 절대다수인 우리 모두가 힘을 합치면 세상은 분명 변화될 거라 박민규는 믿고 있으며 우리에게 함께 동참하기를 바라고 있다.(대한민국 상위 1%에 포함되는 독자는 책을 읽고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저한테 연락주세요 친해지고 싶습니다.흐흐흐)
부와 권력에서 소외된 절대다수를 대변하는 박민규작가의 생각에 동감하면서도 여전히 부와 권력을 쥔 극소수의 인간들이 마냥 부럽고 그들의 철옹성에 들어가길 꿈꾸는 나는 배반을 꿈꾸는 변절자가 된 기분이라 가슴 한켠이 휑해진다....역시, 난 네오 아담이 될 수 없는 세속적인 인간임이 다시 한번 증명된 셈이다..ㅠ.ㅠ
표지 이미지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사용한 점은 탁월한 선택이라 생각된다. 어느 미술 평론가의 말을 빌리면 벨라스케스의 『시녀들』를 소설에 비유하면 1인칭, 2인칭, 3인칭이 존재하는 독특한 작품이라고 한다. 구도적으로 정중앙에 위치한 마리가리타 왕녀를 주인공으로 본다면 3인칭 시점으로 볼 수 있다. 오른편에 팔레트를 들고 서있는 화가는 벨라스케스 자신이기 때문에 1인칭 시점으로 볼 수 도 있다. 그렇다면 2인칭은 어디에 있을까? 2인칭은 비밀을 마리가리타 공주 뒤편에 걸린 거울에 있다. 거울에 비친 2명은 바로 왕과 왕비다. 즉, 『시녀들』은 국왕 내외가 바라보는 시각에서 그려졌기 때문에 2인칭이 될 수 있다. 박민규 작가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의 결말을 하나로 하지 않고 여러 개로 만든점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표지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 나 자신도 결말을 선택할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되어 박민규 작가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어느날]
얼마전에 페르란도 보테르전이 덕수궁 미술관에서 있었다. 주말에 가야지 마음만 있었지 쉬는 날이면 내몸은 길바닥에 붙은 껌딱지가 된다. 한 주동안 쌓였던 피로는 천톤이 넘는 압력으로 내 몸을 눌러 쥐포처럼 납작하게 만든다. 내 몸 하나 겨우 채울만한 싱글 침대에서 하루 종일 흐느적 거리며 침대가 만들어 놓은 가상의 사각형 울타리 밖을 벗어나지 못한다. 다행히 보테르전을 보겠다는 의지가 게으름보다 강했는지 전시 기간을 일주일 남겨둔 얼마 전에 사각형 울타리를 뚫고 어렵사리 다녀 왔다. 약간의 의지와 바지런함만 있으면 충분히 여유롭게 다녀올 수 있는 것을 항상 막판에 허둥거리며 가는 건 내 오랜 고질병인 듯 싶다. 페르란도 보테르의 여러 작품에서 “벨라스케스를 따라서” 는 작품명에서 알 수 있듯이 벨라스케스의 작품 “왕녀 마르가리타”를 보테르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재해석하여 다시 그린 작품이다. 보테르의 작품에 나오는 모든 사물은 금방이라도 터질듯 크게 부풀려 그려져 있다. 청순하고 사랑스런 마르가리타 공주가 아래 그림처럼 다이어트가 필요한 뚱뚱보로 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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