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31일 토요일

명작을 읽지 않은 이들을 위한 읽은 척 매뉴얼

 

제목이 정말 불량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저 불량한 제목때문에 더 끌린다. 남들에게 알리지 말고  혼자만 알고 싶은 책이기도 한다. 국방부에서 뜬금없이 『나쁜 사마리아인들』 을 금서로 만들어 준 덕에 그 책의 존재 사실조차 모르고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들까지 호기심으로 책을 읽는 바람에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르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이유가 어찌 됐든 전 국민이 자유 무역 주의의 실태를 낱낱이 알게 하여 경제 마인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데 국방부가 큰힘을 발휘한 점은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나쁜 사마리아인들』 을 읽었던 이유도 경제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있어서도 아니고 단순히 그 안에 도대체  무슨 내용이 담겨 있길래 금서로 지정 됐을까 하는 청개구리적 반항심과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마음이었다. 『읽은 척 매뉴얼』 을 읽은 이유도 『나쁜 사마리아인들』를 읽은 맥락과 같다. 귀가 따갑게 책을 읽으라고 권해도 모자를 현실에 도리어 읽지도 않은 책을 읽은 척하라는 취지가 너무나 불량해서 였다.

 

『읽은 척 매뉴얼』을  읽을 때  주의 할 점이 있다. 정부의 부정부패등의 불편한 진실을 온 세상에 까발린 죄로 판매 금지된 금서나 글은 없고 살색과 다리를 90도와 180도 사이로 쫙~ 벌린 야릇한 자세로 악막적인 유혹을 보내는 팜므 파탈의 언니들로 도배된 빨간책, 이유 불문 시간 불문 장소 불문하고 무조건 자빠지고서  '우~~, 아~~' 등의 동물적 신음으로만 도배된 음란 서적을 보듯이 타인의 시선을 의도적으로 의식해 가며 몰래 몰래 숨어서 읽어야 한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 본 매뉴얼을 읽는 것은 적들에게 자신을 노출시키는 자살 행위이자 전과목을 '가'로 장식한 초라한 성적표를 남들에게 들켰을 때 느끼는 쪽팔림과 다를 바 없다. 나 책 읽기를 싫어하고 명작 따위는 읽어본 기억이 없고 일년에 읽는 책은 전자 제품 매뉴얼이 전부인 무식한 년놈이라 읽은 척이라도 할 생각이라고 떠벌리며 다니는 우스운 꼴이 된다. 소극적인 방어로는 책을 아끼는 척 북커버를 사용하여 본 매뉴얼의 제목을 가려 적들에게 무슨 책을 읽는지 숨기는 연막 작전이다. 여기서 진일보한 공격적인 자세는 가끔 미간을 좁히고서 알듯 모를 듯한 의미심장한 표정을 만들어 감동의 쓰나미가 몰려 온 척 연기하여 대단히 감동적인 책을 읽는 척 하는 것이다. 주인공에 완전 몰입한 척 눈물 몇 방울을 쫘내면 더욱 완벽하다. 이러한 연기에 완전 몰입하면 적들은 당신을 엄청난 내공의 독서가로 착각하고서 알아서 꼬리를 내리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들의 약점을 파악한 적들이 언제 공격할 지 모른다. 북 브라더가 당신을 주시하고 있다.

 

 

 

1. 걸리버 여행기 - 조너선 스위프트

2. 죄와 벌 - 도스토예프스트키

3.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 프리드리히 니체

4.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5. 1984 - 조지 오웰

6. 고우영 삼국지 - 고우영

7. 이방인 - 알베르 카뮈

8 . 채털리 부인의 연인 - D.H. 로렌스

9. 보바리 부인 - 귀스타브 플로베르

10. 농담 - 밀란 쿤데라

11. 호밀밭의 파수꾼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12. 위대한 개츠비 - F.스콧 피츠제럴드

13. 백년의 고독 - 가르시아 마르케스

14. 상실의 시대 - 무라카미 하루키

15. 연금술사 - 파울로 코엘료

16. 시크릇 - 론다 번

17.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 켄 블랜차드

 

『읽은 척 매뉴얼』을 읽은 목적이 워낙에 불순했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의외의 큰 수확을 얻은 기분이다. 유머 책도 아니고 당당히 국내도서/문학/비평/창작/이론에 분류되는 책을 읽으면서 배꼽 잡으며 웃는 경험은 결코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웃음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딴지 일보>의 편집 국장으로 있는 저자가 쏟아 내는 이질적이면서도 19금(禁)의 엽기적인 글빨에서 오는 웃음이다. 저자의 글빨을 빌려 표현하면 『읽은 척 매뉴얼』을 읽으면서 웃음의 멀티 오르가슴을 경험할 수 있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경험적으로 똥꼬깊쑤키 B급 오락영화 수준을 지향하는 초절정 하이코메디 씨니컬 패러디 황색 싸이비 루머 저널인 <딴지 일보>라는 말만 들어도 내가 배꼽 잡으며 웃은 이유를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느낌으로 알 것이다.

 

배꼽 잡으며 웃었다고 해서 내용이 부실할거라는 단세포적인 생각은 절대 금물이다. 본 책에서 웃음의 역할은 재치 넘치는 선생님이 점심을 먹고 한 참 졸린 시간에 학생들의 졸음을 쫓고 재미있게 수업에 집중할 수 있게 교육적 목적으로 이야기해 주는 약간 자극적이고 야한 유머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17편의 고전과 베스트 셀러를 「시작하 전에」, 「읽은 척 매뉴얼」, 「읽은 척 세부 스킬」로 구분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

 

「시작하 전에」에는 작가와 해당 책의 일반적인 내용들을 소개한다. 「읽은 척 매뉴얼」에는 등장 인물의 이름과 역활 그리고 성격을 요약해줌으로써 등장 인물들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읽은 척할 수 있는 기초 토대를 마련해준다. 그리고 나서 작품의 전체의 내용을 단 몇 페이지로 압축 요약하여 완벽하게 읽은 척 할 수 있게 된다. 「읽은 척 세부 스킬」에는 읽은 척의 단계를 넘어서 가짜가 진짜가 되고 진짜를 가짜로 만드는 부분이다. 『읽은 척 매뉴얼』에서 언급한 17편의 책을 읽은 독자들에겐 허무하고 힘빠지는 이야기가 될 수 있겠지만 책을 읽은 사람보다 더 완벽하게 읽은 척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핵심 요약이 「읽은 척 세부 스킬」에 서술되어 있다. 남들은 한 달 동안 피똥흘리며 어렵게 터득한 지식을 단돈 만 원을 투자하여 남의 지식을 너무나 쉽게 훔쳐가는 파렴치한 놈이 된 기분이다.

 

『읽은 척 매뉴얼』 을 필독서로 꼭 읽어야 할 사람들이 있다. 두꺼운 책을 보면 겁부터 나고 누군가 대신 요약 정리 해주길 바라는 게으른 사람들. 사고의 폭이 좁고 생각이 없던 어릴적에 읽어서 그 감흥과 내용이 머리에서 완전히 삭제된 사람들. 명작이라 불리는 작품을 읽고서도 이게 왜 명작인지 도대체 이해를 못 하는 사람들. 책을 읽고 나면 등장 인물의 이름과 전체 내용은 잘 기억 하면서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하고 오독하는 위험천만한 사람들. 책 읽기를 좋아 해서 같은 책을 읽은 다른 사람들의 느낌은 어땟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이 읽어야 하는 책이군요..흐흐흐

 

생업에 지친 나머지 읽고 싶어도 책 읽을 의욕을 상실한 독자들에게, 설령 의욕은 있어도 1분 이상 집중하기 힘든 만큼 바쁜 독자들에게, 책 얘기만 나오면 자아 한 곳에 치명상을 입는 마음 가난한 영혼들에게 바치는 평생 교양을 위한 현대인의 필독서라는 책의 취지는 독자들의 호기심과 흥미 유발을 위한 미끼 또는 울고 땡강 피우는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는 달콤함 과자에 불과하며 저자의 말처럼 이율배반적인지 모르겠으나 '책'이란 단어만 들어도 소름이 돋거나 알러지 반응으로 끝없는 하품을 동반한 졸음이 몰려오는 지독히도 책 읽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책 읽기를 권장하는 용감한 책이자 전국민의 필독서가 돼야 마땅한 책이다.

 

책을 읽으면 좋은 것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누군가 "어떻게 좋은데?" 라고 공격적인 질문을 하면 구태의연하고 교과서적인 답변이 궁색해져 "읽고나며 나중에 다 살이되고 피가되니까 그냥 읽어!!" 라고 논리적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반강제 협박투로 일갈했는데 저자가 너무나 멋진 이유를 알려 주었다.

 

대개 외로운 사람이 자주 거울을 보게 되듯 책은 외로운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물건이라는 것이다. 다만 거울은 그 어떤 호화찬란한 거울일지라도 외로운 사람을 더욱 외롭게 하는 반면, 좋은 책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필자가 독자들에게 책을 권하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저자에게 부탁의 말이 있다. 우리 대한 민국 국민  모두가 책 읽기를 생활화하는 그날까지 『읽은 척 매뉴얼 2탄』, 『읽은 척 매뉴얼 3탄』 으로 계속 이어졌으면 바람이 있다. 그리고 고우영의 삼국지를 제외하고 우리 나라의 명작들이 빠져 있는 게 너무나 아쉬웠는데 다음 책에선 기대합니다.

 

2009년 10월 25일 일요일

1Q84

 

무라카미 하루키는 긴 설명이 필요 없는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작가이다.  그의 대표작 『상실의 시대』를 통해서 많은 독자층을 확보했고 그 이후 발표된 작품들로 하루키만의 독특한 문학적 세계를  만들어 왔다. 내가 읽어본 하루키의 작품은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상실의 시대』와  『댄스 댄스 댄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해변의 카프카』, 『스푸트니크의 연인』 정도에 불과하고 지금은 제목만 기억날 뿐 내용은 기억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하루키 작품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열성팬들처럼 그의 작품을 모두 찾아서 읽고 또 읽기를 반복하며 사색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문학적 세계에 대한 이해력은 보통 사람들이 아는 수준을 결코 넘지 못 한다. 하루키 작품에 무조건적인 찬양을 보내는 열혈 독자가 아닌 그냥 책읽기를 좋아하는 독자의 입장에서 『1Q84』를 읽은 후 느낀점을 써내려 가겠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국내 작가들의 신작이 나오면 그들이 이전 작품에서 쏟아 냈던 이야기와 문체가 그리워 누구보다도 서둘러 책을 사게 된다. 반면에 무라카미 하루키를 포함해서 외국 작가들의 신작은 일단 책 구매를 멈칫하게 된다. 내가 멈칫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작품에 대한 기대감이 없어서도 아니고 순전히 번역의 질을 모르기 때문이다. 모든 언론들이 갖가지 미사여구를 붙여 극찬을 하더라도 번역이 엉망이면 읽기를 포기하고 새로운 번역본이 나오길 기도한다. 이러한 나의 마음은 대부분의 독자들도 마찬가질거라 믿는다. 번역이란 작업이 창작만큼이나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함부로 욕할 수 없지만 번역 프로그램을 돌린듯한 괴상한 문장으로 한 페이지를 읽기가 힘들 때면 장인 정신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최소한의 정성마저 없다는 생각에 순간 짜증이 울컥하면서 육두문자의 욕지거리가 나온다. 번역이 엉망이라 독자들로부터 외면당한다면 엄청난 선인세비를 주고 『1Q84』의 판권을 사온 출판사는 분명히 큰 손실을 당할 게 너무나 자명하기 때문에 마케팅뿐만 아니라 번역에도 엄청난 공을 들였으리라 생각된다.  역시나 『1Q84』를 읽는 동안 문장이 이상해서 중간에 맥이 끊기는 일 없이 하루키가 만들어 놓은 세계에 몰입할 수 있었다. 나처럼 번역이 이상하면 어쩌지 하는 고민 따위는 휴지통에 과감히 버려도 될 듯싶다.

 

 소설의 제목이 무척 특이해서 간혹 아이큐84로 읽는 사람들이 있다. 『1Q84』에서 Q 는 Question 의 첫자이다.  『1Q84』는 하루키가 밝혔듯이 조지 오웰의 미래 소설 『1984』에서 모티브를 얻어 쓴 소설이다. 1984, 1Q84를 일본어로 읽으면 발음이 같다고 한다. 숫자 9의 발음이 きゅう(큐우)로 영문 Q의 발음과 비슷해서 생기는 언어적 유희일 수 도 있지만 하루키가 소설속의 시간적 배경인 1984년의 세계와 1Q84년의 세계가 동일하지만 다른 세계라는 점을 표현하는 데 적절한 제목임이다. 조지 오웰의 『1984』는 빅 브라더가 통치하는 전체주의가 극도화된 사회로 가정하고 쓴 디스토피아 소설이자 미래 소설이라면 하루키의 『1Q84』는  두 남녀의 숙명적이고 슬픈 사랑의 이야기인 동시에 윤리적 혼돈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정체성을 반추시켜 주는 과거 소설이다

 

『1Q84』 에는 사회와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 있어야 제대로 읽히는 작품인지 도 모른다. 그렇다고 지레짐작 겁먹을 필요없다. 어려운 이야기를 어렵게 쓰는 것은 들숨과 날숨을 자연스럽게 교차시키는 숨쉬기 운동만큼이나 쉬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루키의 능력은 어려운 이야기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재미와 흥미를 부각시키고 그 안에 감쪽같이 어려운 이야기를 숨겨 놓는 것이다. 숨겨 놓은 진실을 찾은 독자는 보물 찾기의 선물을 받겠지만 못 찾더라도 대부분의 독자들은 재미와 흥미로 충분히 하루키의 작품에 대한 만족감으로 충만해진다. 특히 『1Q84』는 달이 두 개 뜨는 1Q84 의 세계가 존재하는 이야기의 소재가 너무 흥미진진해서 심오한 철학적 사고 없이도 내용 자체에 몰입할 수 있다. 독자들이 쉽게 몰입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1Q84』의 독특한 이야기 진행 방식에 있다.

 

각 장이 작중 여남 주인공 아오마메(여)와 덴고(남)의 이야기가 번갈아 나온다. 아오마메의 이야기가 나오면 다음 장은 덴고의 이야기가 나오는 식으로 서로 주거니 받거니 대화하듯 번갈아 나오면서 전체 이야기가 부드럽게 진행된다. 처음에는 아무런 관련없는 인물들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장을 거듭할수록 두 주인공 사이의 숨겨진 비밀들이 첫날밤 부끄럼 가득한 새색시처럼 조금씩 밝혀지면서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마치 장소만 틀리고 동일 시간대를 공유한 주인공의 모습은 두 대의 카메라 앵글에 담은 영화와 같다. 아오마메의 이야기가 궁금하지만 바로 알 수  없고 덴고의 이야기를 읽어야 다음 이야기를 알 수 있다. 반대로 덴고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도 아오마메의 이야기를 읽어야 다음 이야기를 알 수 있다. 이러한 구성은 마치 결정적이고 중요한 장면에서 아쉽게 끝내고서 다음 회를 기다리게 만드는 드라마처럼 독자들이 그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전광석화의 속도로 페이지를 넘기게 하는 마술같은 힘이 있다.

 

『1Q84』의 제목만큼이나 많은 물음이 필요한 작품이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면 비슷한 맥락의 무언가 있을 거라는 판단이 우선하는 건 당연하다. 『1984』는 작가 살던 당시 소련의 스탈린 독재를 비판한 소설이라면 『1Q84』 은 참혹하고 끔찍한 사건으로 점철된 현대 사회를 환타지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그린 소설정도로 매락을 짚을 수 있다. 『1Q84』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과거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겠지만 그들을 낱낱이 살펴보면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과 달리 고독하고 슬픈 과거를 안고서 현실을 살아가는 슬픈 영혼들이다. 서로 감당할 수 있는 무게만 다를뿐 우리들 중에 상처받지 않은 영혼이 있는지 묻고 싶다.

노부인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성폭행의 흔적을 뚜렷하게 볼 수 있었어요. 그것도 수없이 반복된 흔적이에요. 외음부와 질에는 심하게 찢긴 상처들이 있고, 자궁 내부에도 상처가 있었어요. 미처 성숙하지 않은 조그만 자궁에 성인 남성의 딱딱한 성기가 삽입되었기 때문이지요. 그로 인해 난자의 착상부가 심하게 파열되었습니다. 성장하더라도 임신은 불가능할 거라고 의사는 진단하고 있어요."

 

초경이 시작도 안한 어린 소녀 쓰바사의 망가진 몸상태를 설명한 부분을 읽으면 누구나 깜짝 놀랄 것이다. 최근에 인터넷을 뜨겁게 했던 나영이 사건의 보도와 전혀 다를 바 없기때문이다. 소설 속에서나 있을 법한 잔혹하고 비인륜적인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버젓이 벌어지는 게 현실이다. 아오마메가 들어간 1Q84 의 세계는 리틀 피플, 공기 번데기, 퍼시버와 리시버, 마더와 도터, 두 개의 달이란 환타지적인 요소를 삭제하고 보면 현실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이율배반적으로 하루키가 만든 1Q84 세계가 현실이고 1984 는 우리가 꿈꾸는 비현실적인 유토피아인지 모른다. 결국 1984 세계와 1Q84 세계의 경계선이 애매모호해진다. 암살을 사주하던 노부인이 세상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진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진실이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을 믿는다고 말한 것처럼 우리의 믿음에 따라서 현실은 1984의 세계가 될 수 도 있고 1Q84 의 세계가 될 수 도 있다.

 

 

 

하고픈 얘기는 많지만 마지막으로 새로운 여자 주인공의 탄생을 말하고 싶다. 「아이스픽」와 「살인」이란 단어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80년대 남성들의 가슴을 므흣하게 만들었던 섹시 스타 샤론스톤 주연의 『원초적 본능』이다. 이제는 『원초적 본능』의 샤론 스톤과 더불어 『1Q84』 의 여자 주인공 아오마메가 떠오를 듯 싶다. 샤프한 정장을 차려입은 상냥하고 유능한 비지니스우먼의 모습에 상대를 유혹하기 위해 가슴골을 살짝 보여주는 섹시미까지 겸비한 주인공 아오마메는 겉으로 보여지는 화려한 모습 이면엔 죽어 마땅한 남자들을 죽이는 냉정한 암살자의 모습과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호텔바에서 머리가 헤싱헤싱한 중년 남자를 유혹하여 질펀하고 농밀한 섹스를 즐기는 모습이 공존한다. 그녀는 결코 돈을 목적으로 하거나 개인 원한으로 사람을 죽이는 그런 싸구려 암살자가 아니다.  그녀의 암살 대상은 일반적으로 '죽어 마땅한 사람'으로 분류되는 나쁜 남자들이다. 여기서 말하는 '죽어 마땅한 사람'의 기준은 다분히 주관적인 요소일 수 밖에 없지만 힘없는 여자들에게 폭력을 가하고 성폭행하는 남자들이다. 그런 남자들에게 접근해 그녀의 타고난 손감각으로 목덜미에 위치한 사점을 찾아 그녀가 고안한 아이스픽으로 슬며시 찌르면 피 한방울없이 저세상으로 보낸다. 너무나 깔끔하게 죽기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타살을 의심하기는 커녕 심장 마비등의 돌연사쯤으로 처리하게 되는 완벽한 암살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당당히 자신의 죽음을 선택한 그녀는 분명 우리들에게 사랑의 힘을 보여준 것이 틀림없다. 암살자라는 윤리적인 측면을 떠나서 앞으로 오래 기억될 여자 주인공이 될 것 같다.

 

1Q84 의 세계로 넘어가는 아오마메에게 택시 기사가 "겉모습에 속지 않도록 하세요. 현실이라는 건 언제나 단 하나 뿐입니다."라는 충고를 한다. 그 충고는 비현실적인 현실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던지는 충고로 받아들여도 좋다. 겉모습에 속지 않기 위해서는 변하지 않는 중심이 있어야 하는데 그 해답은 번뇌의 수레바퀴에서 찾을 수 있다.  

 

베트의 번뇌의 수레바퀴 같아, 수레바퀴가 회전하면 바퀴 테두리 쪽에 있는 가치나 감정은 오르락 내리락해. 빛나가기도 하고 어둠에 잠기기도 하고, 하지만 참된 사랑은 바퀴 축에 붙어서 항상 그 자리 그대로야

오늘 밤 두둥실 떠있는 달을 보면 내가 속한 현실이 2009 세계인지 200Q 세계인지 알 수 있겠지?

 

2009년 10월 10일 토요일

세계의 끝 여자 친구

 

두번째로 만나는 김연수 작가의 작품이다. 겉표지와 제목만으로 『세계의 끝 여자친구』의 장르를 분류하면 당연히 연애 소설이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분홍색 커버와 제목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나로하여금 연애 소설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연애 소설을 좋아해서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선택한 건 절대 아니다. 천재 시인 이상(李箱)의 죽음과 작품을 모티브로하여 진짜와 가짜의 차이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물음을 우리에게 던졌던 『꾿빠이, 이상』 에서 받은 김연수 작가에 대한 좋은 느낌때문이었다. 『꾿빠이, 이상』 에서 좋은 느낌을 받지 못 했다면 나와 『세계의 끝 여자친구』는 서로를 외면한 체 영원히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작품에서 받은 좋은 느낌은 작가에 대한 호감으로 전이 된다. 그리고 그 작가의 작품은 모두가 좋을 것이라는 맹목적인 믿음으로 확장된다. 그 좋은 느낌에서 오는 이연수 작가에 대한 믿음이 충만한 상태에서 『세계의 끝 여자친구』의 출간 소식을 접했고 이 놈의 몹쓸 손은 성지 순례를 하듯 지마음대로 장바구니에 책을 담아버렸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만남을 일컫어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하지 않던가.

 

깃털처럼 가벼워보이는 겉표지와 달리 그 안은 소통이란 무거운 주제를 다룬 아홉편의 단편 소설로 구성되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을 읽고 나서 내게 다가온 감정은 꿈을 꾼것처럼 멍한 느낌이었다. 꿈을 꿀 당시에는 세포 하나 하나가 꿈틀거리 정도로 너무나 생생하고 현실처럼 느껴지지만 잠에서 깨고 나면 아침 안개처럼 꿈에 대한 기억들이 희미해지고 하루가 지나면 꿈을 꾸었다는 사실만 떠오를 뿐 희미했던 기억마저도 완전히 증발하여 사라진다.  분명 내가 읽긴 읽었는 데 무엇을 읽었는지 기억이 날듯 말듯 한데 결국엔 또렷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그런 답답한 느낌이었다. 만일에 옆에 있던 누군가가 나에게 『세계의 끝 여자친구』 의 내용이 뭐에요? 재미있어요? 라고 묻는 다면 마치 어려운 철학책을 읽은 것처럼 느낌은 있으나 적절한 대답을 찾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 "글쎄요" 라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흐리멍덩한 대답을 퉁명스럽게 내뱉었을 게 뻔하다.

 

개인적으로 작가의 생각과 철학이 명확하게 들어나고 작품이 전달하는 주제가 확실한 책을 좋아 한다. 보통은 책을 읽고 나면 작가가 의도했던 작품의 주제와 일치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나만의 개똥 철학을 바탕으로 새롭게 느껴지고 해석되는 주제들이 있다. 마치 그럴 때면 나는 작가가 만들어 놓은 작품 세계에서 남들이 발견하지 못하고 작가 자신도 몰랐던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는 나의 예리한 통찰력에 자화자찬하기도 하고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라도 된 것마냥 어깨에 힘도 들어가고 우쭐해진다. 물론, 그러한 발견들이 결코 내가 예리한 통찰력을 가져서 그런게 아님을 알면서도 남들 생각 따위는 무시하고 그냥 그렇게 놀게 냅둬라고 시니컬한 태도로 일관한다. 그런데, 『세계의 끝 여자친구』은 작가의 의도도 도통 모르겠고 작품을 해석할 수 있는 주제를 찾아내서 우쭐해야 할 내 감정은 똥묻은 휴지처럼 완전히 구겨지고 휴지통에 내팽개쳐졌다는 느낌에 매우 당혹스러웠다. 읽긴 읽었으나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과연 나는 『세계의 끝 여자친구』 를 읽은 것인가 안읽은 것인가라는 원초적인 고민에 빠졌다.

 

이런 나의 원초적인 고민에 명쾌한 해답을 준 것은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해설이었다. 그 해설을 통해서 김연수 작가가 독자들에게 던진 화두와 내가 꿈처럼 희미하게 느꼈던 감정이 "소통" 이라는 점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아마도 그의 해설을 읽지 않았다면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갖은 혹평과 비판으로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폄훼하고 내 책장의 빈 공간을 채우는 겉 표지만 예쁜 책으로 치부하는 일 정도이다. 읽는 이의 눈을 불편하게 만드는 번역체 문장과 난삽한 문장이 많고 불필요한 묘사가 많아 오히려 작품의 서사성을 방해했다는 둥 어디서 듣고 읽은 풍월을 내 의견인냥 해서 안체하고 주관적 관점을 완전히 배제하고 객관적 관점에서 냉철하게 판단했을 때 이번 작품은 색깔이 없는 무채색의 밋밋하고 재미 없는 소설 따위로 추락을 시켜야만 내 구겨지고 상처입은 자존심이 회복되었을 지도 모른다.

 

보통 독자라면 웬만해서는 소설책 따위을 연이어 두번 읽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나는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해설을 읽고서 소통이란 주제를 등대불삼아 처음부터 다시 읽게 되었다. 너무나 뻔하고 자명한 일이지만 두번째 읽을 때는 처음보다 확실히 다른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밋밋하게만 느껴졌던 작품이 지금은 감동으로 다가오는 작품도 있었다. 특히,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렀어」라는 작품은 처음 느낌과 두번째 느낌이 너무나 달라서 나 자신도 정말 놀랐다. 아마도 내 자신이 흥미위주의 스토리 라인을 찾고자 신경을 쓰면서 읽다보니 김연수 작가가 숨겨놓은 섬세한 문장을 건성으로 읽었기 때문에 온 뚜렷한 차이점으로 생각된다.  케이케이라는 연하남의 축축히 젖은 몸을 좋아했던 변태스러운 오십대 중반의 미국 아줌마가 지금은 죽고 없는 그의 흔적을 찾고자 한국에 온다. 하지만 그녀의 가이드를 맡은 한국 여자사이에 약간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겨 엉뚱한 곳에 다녀오게 되고 그바람에 저녁 약속에 늦는다는 밋밋한 줄거리였는데 지금은 국적과 언어가 틀리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공통된 감정이 그녀들 사이에 '낙(樂)' 과 '하이퍼바이터미노우시' 를 어렵게 말로 통역하지 않더라도 서로는 마음으로 알 수 있었다는 감동 스토리로 다가왔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에 실린 아홉편의 작품별로 간략한 줄거리와 느낌점을 상세히 적고 싶지만 긴장감과 스릴이 생명인 추리 영화나 소설의 결말을 미리 이야기하면 재미없는 것처럼 앞으로 읽게될 미래 독자들의 감동을 위해 이것으로 정리해야 겠다.

 

뭐니 뭐니해도 『세계의 끝 여자친구』 통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작품과 소통하는 법을 찾은 것이다. 재미없고 어려운 책으로만 남겨졌을 작품을 두번 읽었던 것은 소통을 위한 나름대로의 노력이었다. 김연수 작가가 책 말미에서 말했듯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내가 김연수 작가의 작품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불가능하기 때문에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한 것처럼 작품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독자의 마음가짐이 있을 때 비로소 작품에 숨겨진 보물이 빛을 발하는 게 아닐까? 솔직히 말하면 『세계의 끝 여자친구』을 두번 읽었음에도 아홉편의 작품 모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해결해줄거라 믿는다. 다른 독자분들은 『세계의 끝 여자친구』과 제대로 소통했을까 무척 궁금하다.

 

갑자기 소통의 사전적 의미가 궁금해서 찾아 보았다.

소통( )

1.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

2.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

 

깊어가는 가을에 나는 소통이 막혀 있는 주위 사람이 없는지 찾아보고 그 벽을 허물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을 해봐야겠다. 아마도 내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그들에게 다가 서려는 노력을 해야겠지...그런데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기기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009년 10월 6일 화요일

YES24 주간 우수 리뷰에 선정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저녁 퇴근길에 YES24에서 문자 메세지 한통이 왔다.......

 


YES24 입니다. 이주의 리뷰에 선정 되셨습니다. 안내 쪽지 확인해주세요. 감사합니다.

 

나름대로 책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책의  내용에 완전히 몰입하여 읽기보다는 읽은 책의 양 만을 늘리려고 아둥바둥하는 내 모습이 오히려 안쓰럽게 느껴졌다. 이런 내 잘 못된 버릇을 없애고자 책을 읽고나면 그 느낌점을 리뷰로 남겨보자라는 계획을 세우고서 얼마 전부터 YES24 에 리뷰를 남기기 시작했다... 이런 나의 계획을 열심히 실천하라는 응원의 메세지처럼 리뷰에 당첨되어 만원상당의 상품권을 선물로 받았다. 부족한 글솜씨의 리뷰가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진다는 사실이 정말 부끄럽지만 왠지 선생님한테서 "참 잘했어요"라는 칭찬을 받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