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이 정말 불량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저 불량한 제목때문에 더 끌린다. 남들에게 알리지 말고 혼자만 알고 싶은 책이기도 한다. 국방부에서 뜬금없이 『나쁜 사마리아인들』 을 금서로 만들어 준 덕에 그 책의 존재 사실조차 모르고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들까지 호기심으로 책을 읽는 바람에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르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이유가 어찌 됐든 전 국민이 자유 무역 주의의 실태를 낱낱이 알게 하여 경제 마인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데 국방부가 큰힘을 발휘한 점은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나쁜 사마리아인들』 을 읽었던 이유도 경제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있어서도 아니고 단순히 그 안에 도대체 무슨 내용이 담겨 있길래 금서로 지정 됐을까 하는 청개구리적 반항심과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마음이었다. 『읽은 척 매뉴얼』 을 읽은 이유도 『나쁜 사마리아인들』를 읽은 맥락과 같다. 귀가 따갑게 책을 읽으라고 권해도 모자를 현실에 도리어 읽지도 않은 책을 읽은 척하라는 취지가 너무나 불량해서 였다.
『읽은 척 매뉴얼』을 읽을 때 주의 할 점이 있다. 정부의 부정부패등의 불편한 진실을 온 세상에 까발린 죄로 판매 금지된 금서나 글은 없고 살색과 다리를 90도와 180도 사이로 쫙~ 벌린 야릇한 자세로 악막적인 유혹을 보내는 팜므 파탈의 언니들로 도배된 빨간책, 이유 불문 시간 불문 장소 불문하고 무조건 자빠지고서 '우~~, 아~~' 등의 동물적 신음으로만 도배된 음란 서적을 보듯이 타인의 시선을 의도적으로 의식해 가며 몰래 몰래 숨어서 읽어야 한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 본 매뉴얼을 읽는 것은 적들에게 자신을 노출시키는 자살 행위이자 전과목을 '가'로 장식한 초라한 성적표를 남들에게 들켰을 때 느끼는 쪽팔림과 다를 바 없다. 나 책 읽기를 싫어하고 명작 따위는 읽어본 기억이 없고 일년에 읽는 책은 전자 제품 매뉴얼이 전부인 무식한 년놈이라 읽은 척이라도 할 생각이라고 떠벌리며 다니는 우스운 꼴이 된다. 소극적인 방어로는 책을 아끼는 척 북커버를 사용하여 본 매뉴얼의 제목을 가려 적들에게 무슨 책을 읽는지 숨기는 연막 작전이다. 여기서 진일보한 공격적인 자세는 가끔 미간을 좁히고서 알듯 모를 듯한 의미심장한 표정을 만들어 감동의 쓰나미가 몰려 온 척 연기하여 대단히 감동적인 책을 읽는 척 하는 것이다. 주인공에 완전 몰입한 척 눈물 몇 방울을 쫘내면 더욱 완벽하다. 이러한 연기에 완전 몰입하면 적들은 당신을 엄청난 내공의 독서가로 착각하고서 알아서 꼬리를 내리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들의 약점을 파악한 적들이 언제 공격할 지 모른다. 북 브라더가 당신을 주시하고 있다.
1. 걸리버 여행기 - 조너선 스위프트
2. 죄와 벌 - 도스토예프스트키
3.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 프리드리히 니체
4.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5. 1984 - 조지 오웰
6. 고우영 삼국지 - 고우영
7. 이방인 - 알베르 카뮈
8 . 채털리 부인의 연인 - D.H. 로렌스
9. 보바리 부인 - 귀스타브 플로베르
10. 농담 - 밀란 쿤데라
11. 호밀밭의 파수꾼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12. 위대한 개츠비 - F.스콧 피츠제럴드
13. 백년의 고독 - 가르시아 마르케스
14. 상실의 시대 - 무라카미 하루키
15. 연금술사 - 파울로 코엘료
16. 시크릇 - 론다 번
17.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 켄 블랜차드
『읽은 척 매뉴얼』을 읽은 목적이 워낙에 불순했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의외의 큰 수확을 얻은 기분이다. 유머 책도 아니고 당당히 국내도서/문학/비평/창작/이론에 분류되는 책을 읽으면서 배꼽 잡으며 웃는 경험은 결코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웃음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딴지 일보>의 편집 국장으로 있는 저자가 쏟아 내는 이질적이면서도 19금(禁)의 엽기적인 글빨에서 오는 웃음이다. 저자의 글빨을 빌려 표현하면 『읽은 척 매뉴얼』을 읽으면서 웃음의 멀티 오르가슴을 경험할 수 있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경험적으로 똥꼬깊쑤키 B급 오락영화 수준을 지향하는 초절정 하이코메디 씨니컬 패러디 황색 싸이비 루머 저널인 <딴지 일보>라는 말만 들어도 내가 배꼽 잡으며 웃은 이유를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느낌으로 알 것이다.
배꼽 잡으며 웃었다고 해서 내용이 부실할거라는 단세포적인 생각은 절대 금물이다. 본 책에서 웃음의 역할은 재치 넘치는 선생님이 점심을 먹고 한 참 졸린 시간에 학생들의 졸음을 쫓고 재미있게 수업에 집중할 수 있게 교육적 목적으로 이야기해 주는 약간 자극적이고 야한 유머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17편의 고전과 베스트 셀러를 「시작하 전에」, 「읽은 척 매뉴얼」, 「읽은 척 세부 스킬」로 구분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
「시작하 전에」에는 작가와 해당 책의 일반적인 내용들을 소개한다. 「읽은 척 매뉴얼」에는 등장 인물의 이름과 역활 그리고 성격을 요약해줌으로써 등장 인물들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읽은 척할 수 있는 기초 토대를 마련해준다. 그리고 나서 작품의 전체의 내용을 단 몇 페이지로 압축 요약하여 완벽하게 읽은 척 할 수 있게 된다. 「읽은 척 세부 스킬」에는 읽은 척의 단계를 넘어서 가짜가 진짜가 되고 진짜를 가짜로 만드는 부분이다. 『읽은 척 매뉴얼』에서 언급한 17편의 책을 읽은 독자들에겐 허무하고 힘빠지는 이야기가 될 수 있겠지만 책을 읽은 사람보다 더 완벽하게 읽은 척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핵심 요약이 「읽은 척 세부 스킬」에 서술되어 있다. 남들은 한 달 동안 피똥흘리며 어렵게 터득한 지식을 단돈 만 원을 투자하여 남의 지식을 너무나 쉽게 훔쳐가는 파렴치한 놈이 된 기분이다.
『읽은 척 매뉴얼』 을 필독서로 꼭 읽어야 할 사람들이 있다. 두꺼운 책을 보면 겁부터 나고 누군가 대신 요약 정리 해주길 바라는 게으른 사람들. 사고의 폭이 좁고 생각이 없던 어릴적에 읽어서 그 감흥과 내용이 머리에서 완전히 삭제된 사람들. 명작이라 불리는 작품을 읽고서도 이게 왜 명작인지 도대체 이해를 못 하는 사람들. 책을 읽고 나면 등장 인물의 이름과 전체 내용은 잘 기억 하면서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하고 오독하는 위험천만한 사람들. 책 읽기를 좋아 해서 같은 책을 읽은 다른 사람들의 느낌은 어땟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이 읽어야 하는 책이군요..흐흐흐
생업에 지친 나머지 읽고 싶어도 책 읽을 의욕을 상실한 독자들에게, 설령 의욕은 있어도 1분 이상 집중하기 힘든 만큼 바쁜 독자들에게, 책 얘기만 나오면 자아 한 곳에 치명상을 입는 마음 가난한 영혼들에게 바치는 평생 교양을 위한 현대인의 필독서라는 책의 취지는 독자들의 호기심과 흥미 유발을 위한 미끼 또는 울고 땡강 피우는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는 달콤함 과자에 불과하며 저자의 말처럼 이율배반적인지 모르겠으나 '책'이란 단어만 들어도 소름이 돋거나 알러지 반응으로 끝없는 하품을 동반한 졸음이 몰려오는 지독히도 책 읽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책 읽기를 권장하는 용감한 책이자 전국민의 필독서가 돼야 마땅한 책이다.
책을 읽으면 좋은 것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누군가 "어떻게 좋은데?" 라고 공격적인 질문을 하면 구태의연하고 교과서적인 답변이 궁색해져 "읽고나며 나중에 다 살이되고 피가되니까 그냥 읽어!!" 라고 논리적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반강제 협박투로 일갈했는데 저자가 너무나 멋진 이유를 알려 주었다.
대개 외로운 사람이 자주 거울을 보게 되듯 책은 외로운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물건이라는 것이다. 다만 거울은 그 어떤 호화찬란한 거울일지라도 외로운 사람을 더욱 외롭게 하는 반면, 좋은 책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필자가 독자들에게 책을 권하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저자에게 부탁의 말이 있다. 우리 대한 민국 국민 모두가 책 읽기를 생활화하는 그날까지 『읽은 척 매뉴얼 2탄』, 『읽은 척 매뉴얼 3탄』 으로 계속 이어졌으면 바람이 있다. 그리고 고우영의 삼국지를 제외하고 우리 나라의 명작들이 빠져 있는 게 너무나 아쉬웠는데 다음 책에선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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