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4일 일요일

나의 아름다운 정원 - 알을 깨고 나온 동구의 투쟁사

 

심윤경 작가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주인공이자 화자인 동구의 어린 시절을 연대기적으로 그려낸 성장 소설이자 박정희 독재 체제의 붕괴, 12.12 군사 쿠데타 등의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 발생한 1977년부터 1981년까지의 격동기를 에둘러 그려낸 시대 소설이기도 하다. 신인이고 첫 작품이라면 으레 부족한 면이 있고 서툴러도 괜찮을 법한데 마치 오랜 경험으로 필력이 충만한 작가의 작품처럼 문장이 섬세하고 부드러워서 작품을 읽는 동안 마음이 몽글몽글한 구름 위에 앉은 듯이 편안했다. 무거운 주제를 신인답지 않은 필력으로 풀어낸 능력이 제 7회 한겨레문학상을 받게 한 원동력이 아닌가 개인적으로 생각해 본다. 이글을 쓰고 있는 2010년을 기준으로 하면 이미 오래전에 등단을 했지만 나에겐 새롭게 다가온 작가이고 앞으로 심윤경 작가의 작품들을 관심 있게 볼 생각이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제목에서 느껴지는 서정적인 분위기 탓에 작품의 줄거리 대부분이 감수성을 자극하는 이야기들로만 구성 됐을 거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무거운 주제가 배경에 흐르고 있다. 눈치 빠른 독자들은 무거운 주제라는 말에 재미는 없겠다고 생각하겠지만, 작품의 배경이 70, 80년대이기 때문에 30대 이상의 독자들에겐 딱지 치기, 국민 학교 풍경, 동네 닭집에서 볼 수 있었던 구멍이 숭숭 뚫린 원통형의 닭털 뽑는 기계등 유년 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새록새록 떠오르게 하는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는 재미가 있다는 점도 말하고 싶다. 전체 작품을 구성하는 문장들은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함으로  매우 부드럽다. 반면에 반목과 대립으로 얼룩진 사회가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편협한 사고와 선입견의 타파, 그리고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와 양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다. 부드러운 문장으로 강한 주제를 이끌어간 멋진 소설이다.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반목과 대립이 없었던 시기는 없지만 70, 80년대는 유난히 사회적 갈등이 심했던 시기이다. 나의 억지스러운 해석일는지 모르지만  크게는 사회, 작게는 가족내에서 갈등이 생기는 원인은 흑백논리로 상대방의 존재와 생각을 인정하지 않는 극단적인 배타주의라고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말하고 있다. 네~ 억지스러운 해석 맞습니다. 꿈보다 해몽이라 하지 않습니까 계속 지금 같은 분위기로 나갑니다. 쿨럭~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작품 속 다음 일화에 근거한다.

 

난독증 때문에 읽기 쓰기가 어렵고 남들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문장으로 만들어 내뱉지 못 하고 말을 더듬는 동구는 겉으로 보기엔 지진아일는지 모르지만 내면은 누구보다도 심성이 곱고 어른들보다도 생각이 깊은 어린 소년이다. 이런 동구는 특이하게도 몇몇 산수 문제에 대해서 과정 없이 답을 알 수 있었는데 그 풀이 과정을 설명할 수 없자 선생님은 '답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 라고 강조하면서 동구를 이상한 아이로 취급한다. '답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 라는 원칙에서 벗어난 동구는 단지 산수뿐만 아니라 인생 전반에 걸쳐서 뿌리가 없는 불완전한 존재가 될 거라는 어린애답지 않은 생각에 급 우울 모드에 빠진다.

 

두 개의 원칙이 있다. 하나는 '답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라는 원칙이며 또 다른 하나는 '과정보다는 답이 중요하다'라는 원칙이다. 서로 반대되는 두 개의 원칙 중에서 어떤 게 올바른 원칙인지 판가름하는 것은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싫건 좋건 간에 사지선다의 문제들 풀듯이 암묵적으로 하나의 원칙만을 선택하도록 강요받으며 살아왔다. 잘못된 선택을 한 사람은 낙오자, 실패자, 적, 틀린 사람 등으로 분류되어 배척을 당하는 게 일반적인 순리이다. 만일에 서로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면 원칙은 싸움을 일으키는 대의명분이 되기도 하고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는 표식이 되기도 한다.

 

이유를 불문 하고 데모는 나쁜 것이고 데모라는 말만 들어도 자동적으로 적개심을 들도록 교육받은 동구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데모가 왜 나쁜 것인지 이유가 궁금해지고 정말 모든 데모가 나쁜 것인지 좋은 데모는 없는 것인지 의문을 품고서 주입식 교육의 결과로 만들어진 편협한 사고의 틀을 깨고 나오려는 동구의 인간적인 모습이 마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라는 구문을 연상케 되어 감동적이었다. 아마도,  『나의 아름다운 정원』에서 심윤경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개인들이 동구처럼 자신을 둘러싼 편견을 깨고서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 들일 때 비로소 사회가 조금씩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세지인 듯 싶다.

 

마지막으로 정리를 해야겠다. 동구 가족이 화목하지 못하고 계속 삐걱거렸던 가장 큰 원인은 며느리를 미워하고 구박했던 할머니에게 있다. 나 자신도 읽는 내내 세상에~ 세상에~ 어떻게 저렇게 못된 시어머니가 있을 수 있을까 하며 혀를 차기도 했다. 정신적 지주인 박영은 선생님의 가르침을 통해 동구는 모두가 미워하지만 희망없이 살아가는 할머니의 아픔을 이해하고서 노루너미로 내려가 살자는 기특한 제안을 한다. 이런 동구의 노력으로 할머니의 며느리에 대한 미움도 조금씩 줄어들면서 가족에게 여전히 희망의 불씨가 남아 있음을 어렴풋하게 비추면서 소설의 막을 내리게 된다.

 

내가 살아온 날만큼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인 나름의 편견과 선입견들을 조금씩이나마 깨보는 노력을 해야겠다.

 

[책갈피]

 

딱지를 접는 일에는 상당한 손재주가 필요했다. 아무렇게나 접어도 딱지가 되지만 네 귀가 칼같이 반듯한 잘 생긴 왕딱지를 만들려면 정성을 기울여야 했다. 그리고 딱지를 치는 일에도 멋이 있었다. 딱지란 것은 단단하고 탄력이 있어야 상대방의 딱지에 큰 충격을 주어 쉽게 뒤집을 수 있는 반면 수비에서는 얄팍하고 끈기가 있어야 땅바닥에 찰지게 달라붙어 상대방의 공격에도  끄덕없이 버틸 수 있었다. 한편 딱지를 오로지 투쟁의 도구로만 보지 않는다면, 그 놈이 단단한 시멘트 바닥을 펑펑 치면서 동네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멋진 소리를 내는 것도 중요했다. 내가 좋아하는 우렁찬 소리가 나려면 딱지가 구겨진 데 없이 반듯하고 넓고 약간 두꺼운 듯 해야 한다.이런 딱지는 모서리를 맞으면 벌렁벌렁 쉽게 뒤집어져 전투용으로는 좋지 않지만 그놈이 시멘트 바닥에 달라붙으면서 내는 퍼억 하는 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야성적인 면이 있었다. - 132 페이지

 

" 나도 그런 닭대가리들이 좋은 건 아니었지만 밥통같이 생긴 양철통은 신기했다. 처음에는 멀쩡한 닭을 잡아넣으면 그 속에서는 우당탕쿵탕 두들겨패는 소리와 두들겨맞는 닭의 비명소리가 난다. 그러면 앞치마를 두른 총각이 뚜껑을 열고 이미 영혼이 달아난 불쌍한 새를 꺼낸다. 그럴 때면 그 양철통 속에 굵직굵직한 몽둥이가 여러 개 달려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다음에는 총각이 뜨거운 물에 닭을 한 번 푹 담갔다가 도로 그 양철 밥통에 집어넣는다. 그러면 왱 하는 소리가 나고 곧 알몽뚱이가 된 닭이 나온다. 그러면 그 속에는 면도기가 들어 있는 것인가? 나는 몇 번이나 그 안을 들여다보려고 시도했지만 엄마나 총각이나 모두 큰일 난다고 나를 막았다. 그 풀 길 없는 수수께끼는 언제나 나를 흥분시켰다. 혹시 밥통이 순서를 잊어버려서 먼저 닭의 털을 뽑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나는 절대로 순서를 틀리지 않고 두 가지 일을 해내는 그 밥통이 좋았다." - 34페이지

 

91이라고 대답은 했지만 그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선생님들은 누구나 '답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고 강조 했다. 나처럼 답은 알되 과정을 설명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는 치명적인 원칙이었다. 그 원칙이 불공평하다고 억울해한 적은 없었다. 그저 인간이 살아가는 데 치사하게 답만 알고 과정을 모른다는 것은 뿌리가 없고 불완전한 것이라는 설명에 수긍했을 따름이었다. 그 원칙이 산수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인생사 전반에 그렇다는 훈계를 듣고는 앞으로 어른이 되더라도 내 인생이 뿌리가 없고 불완전한 것이 되리라는 생각에 몸을 떨었고, 인생을 완전한 것으로 해주는 그 '과정'을 찾기 위해 따로 노력도 해보았으나 야속하게도 내 머릿속에 과정은 떠오르지 않았다. - 59

 

데모는 나쁜 거다. 나는 데모라는 말이 귀에 들리면 자동적으로 적개심을 느끼도록 교육받았다. 그렇게 징그러운 데모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요" 라고 말할 만한 상대는 내 주변에 없었다. 데모에 대해 교장 선생님이 이야기해준 것 이상으로 생각해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험한 일이었다.... ......나는 어느 날부터인가 , 여전히 데모를 몹시 두려워하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박 선생님이 데모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알고 보면 데모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을 수 있겠고, 그 중에 몇 가지는 크게 나쁘지 않거나, 어쩌면 옮은 일일지도 모른다. 박 선생님은 아마 여러 가지 데모 중에 옮은 것만을 골라서 하고 계실 것이다. 선생님은 그런 문제를 혼동하실 분이 아니었다.

 

 

'동구야, 많이 상심하고 있구나. 대개 이런 일들은 어른들끼리 해결하는 게 맞지만, 어른들이라고 뭐든지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어른들의 해결 방법이 늘 옮은 것도 아니고 , 어린 네가 감당하기에는 박찬 일임에 틀림없지만 잘 생각해보면 길이 있을 거야.' 선생님. 나는 두 손으로 가렸다. 선생님의 얼굴을 보면 이 모든 것이 그대로 끝나버릴 것만 같았다. 목소리만이라도 좋은니 제발 떠나가지 마세요. 숲의 향기만이 코끝에 찡했다. 선생님은 그 동안 얼마나 힘든 일을 겪으셨을까. 그래도 여전히 저렇게 당당하고 꿋꿋하지 않으신가. 나도 이젠 울지 말아야겠다. 나는 두 손으로 눈물을 가렸다.

'누군가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때는 그 사람이 왜 저러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해봐. 모든 행동엔 이유가 있지 않겠니.' 행동의 이유를 생각한다. 앞으로 내가 명심해야 할 새로운 원칙이었다.

 

 

'그래,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해버리면 어떤일에도 해결 방법을 찾을 길이 없어. 남을 이해라려면 네가 그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진심으로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봐야 하거든, 어렵더라도, 그 사람을 위해서 깊이깊이  생각해봐야 한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거야. 특히 이해하기 힘든 사람일수록 정성을 다해서 더 깊이 생각해야 해. 내 생각엔 말이야, 동구 할머님은 아마 다섯, 아니 네 식구 중에 당신이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계시는 것 같어.' - 302 페이지